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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권력 먹고 자란 '性 갑질'…독버섯처럼 번졌다 [연중기획 - 행복사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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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16%가 “성희롱 피해”/가해자 10명 중 8명이 상사

직장만의 문제 아닌 사회 전반에 만연/문화예술계, 10명 중 4명 성폭력 경험/선배예술가·기획자·감독 등 주로 범행/

최근 체육계서 용기 있는 발언 쏟아져/전문가 “개인 간 아닌 권력 의한 폭력

세계일보

#1. “교감 선생님이 ‘○○씨 있는데 이런 얘기 해도 되나’라면서 다른 사람들과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았다.” “교장 선생님이 조리실무사들에게 조리복이 아닌 비키니를 입히면 밥맛이 더 좋아지겠다고 한 적이 있다.” “팔, 어깨를 계속 만져서 항의했더니 ‘아줌마라서 괜찮을 줄 알았다’고 변명한 적이 있다.”(2018년 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학교 비정규직 성희롱·성폭력 실태 설문조사’ 중)

#2. 한 영화배급사 회사의 최대주주이자 사내이사인 A씨는 B씨에 대해 얼굴, 머리, 어깨 등을 만지는 성추행을 상습적으로 일삼았다. 어느 날은 A씨가 업무 중인 B씨 곁에 성기가 닿을 정도로 몸을 밀착시키기도 했다. B씨는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인권위는 A씨에 B씨에 대한 손해배상과 함께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했다.(2018년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 활동 결과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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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권력과 성폭력이 결합한 ‘성 갑질’이 만연하다. 비교적 위계가 뚜렷한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가해자가 직장상사인 사례가 10건 중 8건 수준이었다. 지난해 문화예술계를 시작으로 최근 체육계로까지 확산 중인 ‘미투(me too)’는 이런 성 갑질이 일반 직장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보여줬다. 정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업무상 관계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는 4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육계는 최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미투로 논란이 확산하면서 정부가 뒤늦게 실태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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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은 권력 문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을 직접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6.1%(115명)였다. 이 조사는 지난해 2∼3월 조합원 71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 중 여성은 88.7%(102명), 남성은 11.3%(13명)였다.

성희롱 가해자는 직장상사인 경우가 81.1%(167명·이하 중복응답 가능)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장동료 25.7%(53명)였고 고객도 10.2%(21명)나 됐다. 성희롱 발생 장소는 회식자리가 77.2%(159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업장 내 43.7%(90명), 출장 11.2%(23명), 교육 또는 워크숍 5.8%(12명) 순이었다. 성희롱 유형은 성적 발언이나 농담(78.2%), 불쾌한 신체접촉(64%)이 가장 빈번했다. 그 외 ‘여자가’ 또는 ‘남자가’ 등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받은 경우(32.5%), 외모에 대한 성적 평가나 비유(31.1%) 등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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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직장 내 성희롱은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성희롱이 발생해도 ‘그냥 참는다’고 답한 이는 76.7%(158명)에 달했다. 반면 당사자에게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한다는 응답은 15%(31명)에 그쳤다. 직장 내 인사팀이나 고충처리위원회, 노동조합 등에 신고한다는 응답도 10%대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이 꾸린 ‘젠더갑질 실태조사팀’이 KT, SK브로드밴드, 딜라이브, 기아차 화성공장, 교육공무직 등 총 282명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집단면접 조사에서도 69.9%(197명)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희롱 성폭력 사실을 직장에 알리지 않았다고 답한 이들이 이 중 75.6%(149명)에 이르러 한국노총 조사치와 유사했다. 대부분 ‘알려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불이익이 있을까봐’ 등 이유에서였다.

김순희 한노총 여성본부장은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가해자가 대부분 직장상사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대부분 ‘그냥 참는’ 선택을 하고 있다”며 “이런 성희롱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의 문제로, 보다 심각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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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는 고질적 ‘성 갑질’의 결과

고착화된 성 갑질은 그 반작용으로 미투를 일으켰다. 지난해 이윤택 전 연희거리단패 예술감독, 김기덕 영화감독 등에 대한 미투는 성폭력으로 얼룩진 문화예술계의 민낯을 보여줬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대응 차원에서 지난해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을 운영했다. 조사단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문화예술계 종사자 중 업무상 관계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 3718명 중 1513명(40.7%)에 이르렀다. 성별로 보면 여성 응답자 2478명 중 1429명(57.7%), 남성 1240명 중 84명(6.8%)이 성희롱·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선배예술가 64.9%(982명·이하 복수응답), 기획자·감독 52.5%(794명) 등 순으로 많았다.

성희롱·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한 문화예술계 종사자 중 87.6%(1326명)는 피해 당시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이들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은 결과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가 69.5%(922명·이하 복수응답), ‘문화예술계 활동에 불이익이 우려되어서’ 59.5%(789명) 등 순으로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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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에 이어 최근엔 체육계에 미투 바람이 부는 중이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에 대한 고발로 촉발된 미투는 체육계 전반에 확산했다. 부랴부랴 정부도 실태조사·대책 수립에 나섰다. 인권위는 지난 22일 스포츠 인권 특별조사단을 꾸려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25일엔 정부가 사회관계 장관 회의를 열고 체육분야 성폭력 등 인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범부처 대책인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 대책’을 내놨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해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 내용이 사실 이전에 아예 없던 것들은 아니다”며 “결국 실태조사든, 가해자 징계 강화든 그게 정말 현장에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가 끝까지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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