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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1만 명이 기다리는 토마토를 아시나요? 디자이너 출신 농부가 말하는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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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토마토밭에서 꿈을 짓다
원승현 지음 | 틈새책방 | 232쪽 | 1만4000원

"한 치 앞을 모르는 시장에서 수입 농산물이나 대기업과 겨루기 위해선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브랜드로 존립하는 게 소농이 살아남을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을까?’ 많은 도시인에게 농사는 만만해 보인다. 땅만 있으면, 땅이 없어도 빌리기만 하면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전문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여기에 여유 있는 전원생활을 즐기는 킨포크 라이프 스타일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많은 이들이 ‘유유자적하는 일상을 즐기는 농부’를 꿈으로 꼽는다.

하지만 농업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유사 이래 농업이 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농촌에 대한 로망을 안고 귀농을 한 이들 대부분이 실패하는 이유는 ‘일상 탈출’이라는 목표만으로 농업에 섣부른 도전을 했기 때문이다.

원승현 그래도팜 대표는 홍익대에서 프로덕트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고향인 강원도로 귀농했다. 그도 처음엔 여느 귀농인들처럼 삭막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낭만 농부’가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농업 현장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농사라는 마음가짐으로는 삶의 기반마저 흔들리고, 농업이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먹거리의 근간까지 흔들리 걸 알았다.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그는 땅에서 브랜드를 짓는 ‘브랜드파머(brand-farmer)'가 되기로 했다.

원 대표는 농업 현장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적 사고를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찾은 대안이 농업의 브랜드화다.

그는 상품의 특성과 소비자의 반응, 담고자 하는 가치를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관련 짓고’, ‘이름 짓고’, ‘구분 지으’면서 나온 키워드. 여기서 공통되는 ‘기’라는 글자와 토마토를 합쳐 ‘기토’를 만들었다. 기토의 소비자들은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농장의 가치를 공유하는 후원자다. 1년에 두 번 수확해서 직거래를 마치면, 고객들은 조용히 다음 작기를 기다린다. 이런 사람이 1만 명 이상이다.

원 대표의 목표는 이들 소비자와 농장을 ‘관계 짓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농장을 돕는 게 아닌, 농장이 자신들을 돕고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장이 사라지면,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농산물의 생산부터 소비자까지 모든 것을 묶어 하나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만드는 것. 화려한 디자인의 상표와 거창한 이름이 아닌 상품의 본질과 가치를 담아 소비자의 식탁에 올리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농업의 본질이다.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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