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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은하수마저 부러워하는 눈과 온천의 겨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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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일본 아키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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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로 눈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파란 부분이 일본에서 가장 깊은 화구호 다자와코다. 지구상 스키장 중에 호수를 보며 다운힐하는 곳은 드문데 거기서도 이곳 풍광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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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키타현의 그 풍성한 눈. 동해의 선물이다. 따뜻한 바다와 차가운 북서 한풍의 조화다. 습기 머금은 계절풍은 오우·데와 두 산맥을 넘으며 등짐을 내린다. 그게 이 풍성한 눈. 그래서일까. 이곳 설경은 낯설지 않다. 위도가 함경남도(북한)쯤 되다 보니 거기가 이렇지 않을까, 상상도 한다. 통일이 되면 거기서 이 풍경을 만끽할 수 있으려니 하면서.

이 겨울 아키타 여행은 ‘눈(雪)’으로 푼다. 이름하여 ‘아키타 눈 3제’(三題). 고마가타케산의 다자와코 스키장, 모리요시산의 주효(樹氷·수빙), 아키타 나이리쿠센의 ‘도시락 열차’다. 북방의 눈 고장 아키타현으로 여행을 떠난다.

지난달 중순 다자와코 고원(해발 600∼700m). 눈은 140cm가량 쌓여 있었다. 1일 현재는 170cm. 근 보름 만에 30cm가 더 내렸다. 현 평균 겨울 적설량은 377cm. 앞으로 2m는 더 내린다. 지금 찾아도 설경 감상에 문제가 없다. 지난 23년간 내가 찾은 스키장은 160여 개. 알프스와 로키산맥은 물론 알래스카와 네게브(이스라엘) 모하비(라스베이거스) 사막, 서던알프스(뉴질랜드 남섬)와 기타알프스(일본 혼슈 중부) 등 지구촌 곳곳이다. 그런 곳과 이 다자와코 스키장을 비교하면? 비교우위다. 적설량, 설질, 코스 면에서, 규모가 작고 시설이 적다는 것만 열위다. 하지만 비용과 애프터스키(After ski·스킹 이후의 휴식) 매력을 더하면 대답은 반전. 절대우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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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토온천마을의 고풍스러운 온천료칸 쓰루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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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스키여행 상품은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다. 숙식 리프트, 교통편(공항-숙소-스키장) 등 일체 포함형이다. 참가자는 스키를 신고 벗기만 하면 된다. 그 가격, 현지인 제공가보다도 저렴하다.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서 이걸로 가라고 권할 정도다. 그런데 일본 스키여행의 매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절대불패 비교불가의 또 한 방이 있다. 온천 료칸에서 즐기는 애프터 스키다. 온천욕은 피로 풀기에 최고인데 그걸 눈에 파묻힌 로텐부로(노천온천탕)에서 즐긴다면….

온천욕은 식욕을 자극하게 마련. 그때 료칸 다다미방엔 산해진미의 가이세키 요리상이 유카타 차림의 스키어 앞에 차려진다. 상위 1인용 풍로 무쇠솥에선 아키타고마치 특미 쌀로 밥 짓기가 진행되고 그동안 여행자는 차디찬 아키타 사케를 작은 잔에 따라 지극정성이 한눈에 드러난 그 정갈한 음식과 반주(飯酒)하며 식도락을 즐긴다. 그런 동안 아키타의 긴긴 밤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과 더불어 깊어간다.

다자와코 스키장

아키타현 내 최고·최대인 이곳은 아키타현의 상징인 수심 423m의 거대 화구호 다자와코(田澤湖)와 동편 고마가타케(駒ケ岳·1637m) 산자락 사이 다자와코 고원에 조성. 호수로 뻗어 내린 능선이 슬로프다. 호수 조망 다운힐 스키장은 세계적으로도 드문데 이곳은 그중에도 호수 경관이 압권에 든다. 또 하나 매력은 딥스노 파우더(Deep snow powder) 스킹. 내렸다 하면 설면을 순식간에 10cm 이상 덮는 폭풍강설이 요체.

여기선 스키장 안에서 트리런(Tree run·나무 사이 스킹)과 딥스노 파우더를 즐긴다. 올해는 나무를 솎아내 위험은 줄이고 재미는 돋웠고 슬로프 일부는 아예 압설을 하지 않고 압설 슬로프에서도 가장자리는 남겨두는 형태다. 백컨트리(스키장 외곽) 스킹도 제공(가이드 동반)한다. 내년엔 스노모빌로 산을 오르는 모빌백컨트리도 개시할 예정.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나는 굳이 백컨트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스키장 내 딥스노 파우더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곳의 비압설 딥스노 구역은 슬로프의 3분의 1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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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눈으로 덮인 순백의 세상에서 즐기는 스키는 한국에서의 그것과 완벽히 차원을 달리한다. 겨우내 370cm의 눈이 내리는 혼슈 북방 아키타현의 이 다자와코 스키장은 지금껏 다녀온 160개 스키장 가운데서도 설질과 풍광 등이 매혹적인 명소로 거의 최고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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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스노 파우더 스킹은 유럽처럼 일본에서도 대세. 스키장마다 경쟁적으로 트레일을 늘리는 추세인데 우리라고 다를까. 매년 그 수가 늘고 있다. 이걸 즐기는 데는 폭넓은 팻(Fat)스키가 필수. 카빙스키는 활주 중 눈에 박혀 즐기기도 어렵고 사고 위험도 높다. 캐나다스키지도자협회(CSIA) 공인 레벨4의 정우찬 프로가 ‘파우더 아카데미’를 올 시즌 아피스키장(이와테현)에서 개최(2월 한 달)한 것도 이런 추세를 증명한다.

다자와코 스키장은 온천마을이 형성된 다자와코 고원에 있다. 그래서 숙소는 모두 온천료칸 스타일 호텔. 투숙객은 무료 셔틀버스로 스키장을 오간다. 이동 시간은 10분 내외. 차로 10여 분 거리 인근의 뉴토(乳頭)온천도 인기다. 고요까지 녹아든 듯한 운치 만점의 이 산중엔 고색창연한 온천 료칸 7개가 숨어 있다. 최고는 남녀 혼탕 로텐부로의 비탕(秘湯)온천 쓰루노유(鶴の湯). 7곳 온천은 전용 순환버스 승차권과 입욕권을 포함한 ‘온센메구리’ 티켓으로 즐긴다.

다자와코로 떠나는 일본 스키여행. 딥스노 파우더 스키를 즐긴 후엔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며 저녁식사로 료칸 음식을 주당의 고장 아키타(1인당 사케 음주량 전국 2위)에서 눈 녹은 물로 재배한 쌀로 빚은 사케로 반주하는 호사가 기다린다. 그런 뒤 밤하늘 은하수 감상은 덤. 그리고 이거야말로 아키타 겨울여행의 진수가 아닐 수 없다.

주효(수빙·樹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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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리 산정의 주효평원. 덮인 눈에 나무는 괴물 모습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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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눈이 많이 내리고 기온이 낮은 특정 지점에만 나타나는 자연 현상. 가지에 붙은 눈이 떨어지지 않고 얼어붙는 현상이 반복되며 그 형체가 나무인지조차 알 수 없게 변하는 것인데 ‘스노 몬스터(Snow Monster·눈 괴물)’란 별명은 그 모습이 괴이해서 붙여진 것이다. 일본에선 핫코다산(아오모리현)과 자오산(야마가타현)이 유명한데 아키타현의 아니(阿仁)스키장의 요시모리(吉森)산도 못지않다. 이곳 주효평전은 곤돌라로 20분 만에 오른다. 제공하는 스노슈(설피)를 장착하고 10분 걸어 오르면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을 만난다. 파란 하늘 아래서라면 금상첨화. 하지만 두 번 찾은 기자도 그런 행운은 누리지 못했다. 설도 쇠었으니 새해 운수 점치기로 그 행운에 한번 도전해 보심은 어떠실지.

▼달리는 열차 속 ‘맛 상자’… 주민들의 정성에 감동 한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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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만들어 역마다 실어준 음식을 맛보며 설국여행을 즐기는 곳쓰오 다마테바코 설국도시락열차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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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열차를 탔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맛있는 도시락을 맛봤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지난달 18일 오전 11시 50분. 아키타 나이리쿠센(內陸線) 철도의 가쿠노다테역을 버스용 디젤엔진 동력의 꼬마열차가 떠났다. 한 칸은 식당차(36석), 다른 한 칸은 일반객차. 열차가 움직이자 핫피(일본인이 일할 때 입는 전통 스타일의 얇은 윗도리 겉옷) 차림의 아주머니가 식당 칸 승객에게 인사했다. 이 먼 곳을 찾아준 데 대한 감사였다. 그러면서 아니아이역(오후 1시 14분 도착)까지 달리는 동안 맛볼 오늘의 도시락에 대해 설명했다.

첫 음식은 군밤, 이어 소바(메밀국수)와 쓰케모노(절임야채)가 나오고 밥과 반찬, 디저트로 과일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열차가 사이묘지역에 섰다. 승강장엔 한 아주머니가 큰 봉투를 들고 서있었다. 그녀는 그걸 식당 칸에 건넨 뒤 떠나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거기 담긴 건 신문지로 정성껏 싼 군밤. 사이묘지는 큰 밤 명산지다. 다음 역 야쓰에서도 같았다. 한 할머니가 큰 플라스틱 상자를 열차에 실어 주었다. 그건 이 마을에서 수확한 메밀로 만든 국수(소바)와 양념간장.

음식은 이렇게 역마다 하나씩 건네졌다. 승객은 그 즉시 그걸 차례로 음미했다. 그동안 차창으론 눈 덮인 아키타 산중평원의 소담스러운 설경이 줄기차게 펼쳐졌다. 눈치챘겠지만 그 음식은 제각각 역마을 주민이 준비한 것. 북방 아키타의 풍정과 제각각 오지 부녀자의 정성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 보니 음식 이상이었다. 마음의 선물이자 정성의 극치. 그 맛이 감동으로 치달은 건 당연하다.

이 열차는 ‘곳쓰오 다마테바코’라 불린다. ‘곳쓰오(ごっつお)’는 아키타 지방 사투리로 ‘맛있는 음식(고치소·こ馳走)’, ‘다마테바코(玉手箱)’는 ‘열면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자’. 이게 태어난 배경도 이름만큼이나 특별하다. 사설철도 나이리쿠센의 경영 적자를 한 푼이라도 줄여 주자는 주민의 염원이다. 1936년 개통 당시만 해도 철도는 돈줄이었다. 아니(阿仁) 지역 구리광산 덕분. 하지만 폐광 이후엔 달랐다. 폐선 여부가 노심초사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반전됐다. 도시락열차로 명소가 됐다.

도시락열차(정원 36명)는 늘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1년에 몇 번뿐이다. 올겨울에도 단 세 번에 그친다. 식당 칸 ‘오자시키(お座敷)’는 일본 전통 식문화를 반영한 실내로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아주머니들은 복도를 오가며 사케와 맥주, 기념품도 판다. 낮술 문화가 없는 일본이지만 여행자는 예외. 지극정성의 음식에 아키타 사케를 곁들인 반주(飯酒)에 북방 설경 감상까지 더한 만큼 이 여행은 가히 아키타 여행의 진수라 할 만하다. 눈 가뭄에 허덕이는 우리 여행자에게 더더욱….

도시락열차: 이 철도(단선) 노선 공식 명칭은 ‘나이리쿠주칸테쓰도센(內陸縱貫線·내륙종관선)’이지만 ‘아키타 비진 라인(秋田 美人 Line)’이란 애칭으로 통용 중. 구간은 가쿠노다테(센보쿠시)∼다카노스(기타아키타시) 94.2km(2시간 45분 소요). 열차 이름은 ‘마타기(マタギ·아키타 산악 곰 사냥꾼 통칭)’호. 도시락열차(가쿠노다테∼아니아이 구간) ‘곳쓰오 다마테바코’ 요금은 6900엔(약 7만 원). 23일에 올겨울 마지막 운행.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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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 아키타공항 직항편 없음. 권장 스케줄은 ‘인천∼센다이(공항)∼도후쿠 신칸센∼다자와코. ◇거리(다자와코역 기준) ▽스키장(고원온천마을) 42km ▽쓰루노유 48km.에어포트라이너(예약택시) 1500엔(1인), 버스(센다이공항∼숙소·스키 패키지 전용) 편도 4시간.

다자와코 스키장: 드라마 ‘아이리스’(2009년)에도 등장. 표고차 608m(베이스 578m·정상 1186m), 베이스 2개(긴레이·가모시카), 코스 14개(상·중·초급자용 40-30-30%). 400m 광폭슬로프(하단)로 충돌 위험이 아주 낮고 어떤 수준이라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트레일 특징. 미즈사와 패밀리 코스(총연장 1km·경사 10∼20도)는 가족 스키어의 설원 만끽 코스로 완벽하다. 식당 음식도 주문 즉시 조리해 내는데 가성비도 좋다. 키즈클럽도 운영.

아니스키장: 아키타 나이리쿠센 철도의 아니아이(阿仁合)역(기타아키타 시) 근방. 예약택시(1인당 900엔)로 20분 거리다. 모리요시산은 아라이(니가타현) 핫코다산과 더불어 일본 10대 대설 지역 중 한 곳(1일 현재 적설량 정상 335cm, 베이스 195cm). 리프트 최정상(1200m)은 총연장 3473m의 곤돌라(6인승)로 오른 표고차 663m의 수빙 평원. 코스는 단순해도 설질은 일본 최고. 눈이 워낙 많이 내려 백컨트리로 더 유명한데 주효와 너도밤나무 숲 트리런은 2, 3시간 이상 진행된다. 4월엔 주말만 개장(주중 주효 투어는 설상차 이용), 폐장은 골든위크(4월 27일∼5월 6일) 직후.

온천: ◇다자와코 고원 온천마을: 다자와코 호수와 스키장 사이 고원지대의 온천으로 다양한 형태의 숙소 산재. ▽고마가타케 그랜드호텔 ▽뉴스카이호텔

아키타현
: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현 바로 밑 동해안. ▽Akita’s NAVI: 관광 교통안내 앱. 한글 지원. 제철 이벤트와 관광시설, 도보 및 노선버스 루트 안내 기능 탑재.

센보쿠시(아키타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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