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사회활동에 지장’ 많아
의료 현장선 “피임 등 늘었지만
낙태 여성 범죄자 취급하는데
솔직하게 답을 할 수 있겠느냐”
女 75% “낙태죄 형법 개정해야”
헌재 위헌심판에 영향 미칠 듯
보건사회연구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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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임기 여성의 인공임신중절(낙태)규모가 2010년의 30% 수준인 연간 5만건 정도로 조사됐다. 피임 문화 정착과 사후피임약 처방 증가 등이 배경으로 꼽히지만 의료현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편 여성 4명 중 3명이 낙태죄 개정에 동의해, 현재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복지부가 의뢰해 지난해 만 15~44세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2005년, 2011년에 이어 세 번째다. 응답자 중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756명으로 임신을 경험한 여성(3,792명)의 19.9%였다. 낙태 연령은 17~43세까지 다양했고 평균 연령은 28.4세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낙태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로 확인됐다. 설문조사 결과 인공임신중절률은 만 15~44세 여성인구 1,000명당 4.8건으로 나타났다. 2005년(29.8건) 2010년(15.8건)보다 대폭 낮아진 수치다. 이에 따라 2017년엔 모두 4만9,764건의 중절수술이 시행된 것으로 추정됐다. 2010년 16만8,738건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낙태 건수 급감은 피임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성 경험이 있는 여성(7,320명)의 콘돔 사용률은 2011년 37.5%였지만 지난해 74.2%로 크게 높아졌다. 사후피임약 처방건수도 2017년 17만8,300건으로 2012년보다 28.8% 늘었다. 가임기 여성이 2017년 1,027만명으로 2010년보다 8.5% 줄어든 점도 영향이 컸다고 보사연은 분석했다.
주된 낙태 이유는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2.9%)’ ‘자녀계획(31.2%)’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낙태를 위해 수술이 아닌 약물을 사용한 경우는 74명(9.8%)이었는데 이중 53명은 낙태에 실패해 추가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의료현장에서는 “중절수술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간 5만건이라는 수치는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임신이 전반적으로 줄긴 했지만 낙태를 하는 여성과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데 실태조사에 솔직하게 답을 할 수 있겠느냐”며 “낙태가 음성적으로 이뤄지며 여성들이 부작용을 호소하는 등 의료계가 체감하는 현실적 어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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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헌재에서 진행중인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형법 제269조, 270조에 따르면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형, 수술한 의사 등 관계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처음으로 낙태죄 폐지 여부를 물은 이번 실태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5.4%가 낙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더 나아가 84.2%는 ‘안전한 낙태는 사회구성원의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설문 여성의 48.9%는 모자보건법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합법적 낙태 사유를 확대하라는 이야기다. 모자보건법은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임신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에 한해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임신기간 낙태를 고려한 이유 가운데 강간·준강간은 0.8%에 그쳤다. 개정에 찬성한 여성 중 상당수는 ‘경제적 이유’(87.1%) ‘자녀 계획’(78.4%) 등의 이유에도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 인권단체 연합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이날 입장문을 발표하고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요구”라면서 “정부와 의회는 형법 개정을 통한 낙태죄 폐지와 함께 사회경제적 여건의 보장, 보험 적용, 성교육과 피임의 체계적 확대, 상담과 사후관리 등의 의료적 보장 확대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여성들이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미프진 등 임신중절용 약을 구하다 쓸모 없는 중국제 가짜를 구입해 건강까지 해치는 경우가 많다”며 “여론이 바뀐 만큼 여성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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