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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여성 4명중 3명 “낙태죄 폐지해야”… 헌재 합헌 입장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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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헌재 심판 앞두고 대규모 실태조사… 영향 미칠까 주목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낙태 추정 건수_김경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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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4명 중 3명이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형법 개정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여부 심판을 앞두고 나온 정부 주도의 대규모 실태조사 결과가 위헌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복지부가 의뢰해 지난해 만 15~44세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2005년, 2011년에 이어 세 번째다. 처음으로 낙태죄 폐지 여부를 물은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5.4%가 낙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유로는 ‘여성만 처벌하기 때문에’(66.2%)가 가장 많았다. 더 나아가 84.2%는 ‘안전한 낙태는 사회구성원의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형법 제269조, 270조에 따르면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형, 수술한 의사 등 관계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현재 헌재에선 이들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의료단체는 물론 여성가족부까지 재검토 의견을 밝힌 데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역시 지난해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연내 처리에 노력하겠다고 말한 만큼 어느 때보다 여론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설문 여성의 48.9%는 모자보건법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합법적 낙태 사유를 확대하라는 이야기다. 모자보건법은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임신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에 한해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한다. 그러나 실태조사 결과 주된 낙태 이유는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2.9%) ‘자녀계획’(31.2%) 등이었다. 모자보건법 개정에 찬성한 여성 중 상당수는 ‘경제적 이유’(87.1%) ‘자녀 계획’(78.4%) 등의 이유에도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 인권단체 연합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이날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요구”라면서 “정부와 의회는 형법 개정을 통한 낙태죄 폐지와 함께 사회경제적 여건의 보장, 보험 적용, 성교육과 피임의 체계적 확대, 상담과 사후관리 등의 의료적 보장 확대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도 “여성들이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미프진’ 등 임신중절 약을 구하다 중국제 가짜를 구입해 건강까지 해치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낙태를 위해 약물을 사용한 경우는 74명(9.8%)이었는데 이중 53명은 낙태에 실패해 추가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 결과 2017년 가임기 여성의 인공임신중절(낙태)규모는 2010년의 30% 수준인 연간 5만건 정도로 조사됐다. 인공임신중절률은 만 15~44세 여성인구 1,000명당 4.8건으로, 2005년(29.8건) 2010년(15.8건)보다 대폭 낮아졌다. 이에 따라 2017년엔 모두 4만9,764건의 중절수술이 시행된 것으로 추정됐다. 2010년 16만8,738건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낙태 건수 급감은 피임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성 경험이 있는 여성(7,320명)의 콘돔 사용률은 2011년 37.5%였지만 지난해 74.2%로 크게 높아졌다. 사후피임약 처방건수도 2017년 17만8,300건으로 2012년보다 28.8% 늘었다. 가임기 여성이 2017년 1,027만명으로 2010년보다 8.5% 줄어든 점도 영향이 컸다.

다만 의료현장에서는 “중절수술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간 5만건이라는 수치는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임신이 전반적으로 줄긴 했지만 낙태를 하는 여성과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데 실태조사에 솔직하게 답을 할 수 있겠느냐”며 “낙태가 음성적으로 이뤄지며 여성들이 부작용을 호소하는 등 의료계가 체감하는 현실적 어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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