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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체 게바라 동상 아래서 헤밍웨이 모히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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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흥겨운 살사 춤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추억

『노인과 바다』를 낳은 작은 포구

서러운 역사에도 웃음 잃지 않아

이게 쿠바다
중앙일보

쿠바에서 인상적인 대상은 자연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국의 관광객을 바라보는 쿠바인의 무심한 표정이었다. 촬영을 조건으로 먼저 ’원 쿡(One CUK)“을 요구하는 쿠바인도 많았다. 이 사진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이른바 ‘ 1쿡 모델’이다. [사진 손민호 기자, 그래픽 전유진 선임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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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a es Cuba(에스따 에스 쿠바).”

우리말로 풀이하면 이렇다. “이게 쿠바야.” 쿠바에서 보낸 열흘간 가장 많이 들은 문장 중 하나다. 이를테면 까사(Casa·민박집)에서 뜨거운 물이 안 나올 때, 빵을 샀는데 잔돈이 없다며 거스름돈을 안 줄 때, 공항에서 짐이 안 나와 애태울 때 쿠바 사람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스따 에스 쿠바.”

불편한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식당이고 카페고 기차고 라이브 음악이 흐를 때, 아무 데서나 낯선 외국인 붙들고 살사 스텝을 밟을 때, 카리브해가 달빛으로 반짝일 때 쿠바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에스따 에스 쿠바.”

쿠바는 이상한 나라였다. 17세기 스페인풍 건물 앞으로 1950년대 미제 올드카가 질주하는 공산국가라니. 더욱 이상한 건, 이상한 나라의 국민이었다. 그네들의 서러웠던 어제를 나도 아는데, 오늘의 쿠바인들은 어제가 남긴 유산을 마냥 즐겼다. “에스따 에스 쿠바”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슬픈 열대의 기쁜 살사

쿠바에서 보낸 열흘. 온종일 살사가 울려퍼졌다. 하나같이 라이브 음악이었다. 딱 따닥 따~닥, 막대기(끌라베스) 2개가 부딪혀 소리를 내면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고,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쿠바는 나라 전체가 살사 공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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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리니다드 초원지대에 45m 높이의 탑이 우뚝 서 있다. 옛날 사탕수수밭의 노예들을 감시하던 전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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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개장한 아나바의 나시오날 호텔. 쿠바의 전설적인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이 호텔 1층 카바레 ‘파리지엥’에서 연주했다. 요즘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리더 꼼파이 세군도(1907∼2003)의 아들 살바도르 레피라르가 이끄는 밴드가 무대에 오른다. 토요일 밤에만 무대에 올라 토요일 밤에 찾아갔다.

공연 수준과 현장 분위기는 딱히 관계가 없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이 우르르 나와 플로어를 차지했다. 마침 우리 일행 중에 살사 마니아 4명이 있었다. 그들이 다른 일행에게 기운을 불어넣었다. 평생 춤하고는 담을 쌓고 산 70대 어르신들도 플로어로 나갔다. 살사였을까. 아무렴, 아니면 어떨까.

쿠바는 춤의 나라다. 살사는 물론이고 룸바·맘보·차차차도 쿠바에서 시작됐다. 춤은 즐겁지만, 춤의 역사는 슬프다. 400년간 쿠바를 통치한 스페인 백인의 문화와 쿠바 사탕수수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의 문화가 뒤섞여 특유의 쿠바 문화를 형성했다. 쿠바 전통 음악이 하나씩 댄스 장르로 자리를 잡은 건 1900년대 초중반이었다. 미국의 검은 달러가 쿠바 경제를 주무르던 시절. 미국 마피아와 부르주아가 거들먹거리며 앉아 있던 아바나의 카바레에서 스텝이 완성됐다. 유래 따위는 개의치 않는지, 쿠바는 밤마다 살사로 뜨거웠다. “에스따 에스 쿠바.”

헤밍웨이 “나는 입양 쿠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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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시내에 있는 헤밍웨이의 단골 모히또 집 ‘라 보르기따’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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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히또는 라 보데기따, 내 다이끼리는 엘 플로리디따.”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일찍이 전 세계 관광객에게 내린 행동 지침이다. 아바나 구도심 ‘올드 아바나’에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술집 두 곳이 있다. 라 보데기따와 엘 플로리디따. 두 집 모두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모히또(아래 사진)는 럼에 설탕과 민트를 넣은 칵테일이고, 다이끼리는 슬러시처럼 생긴 럼 칵테일이다. 헤밍웨이가 당뇨와 고혈압을 앓았던 탓인지 두 집의 칵테일 모두 독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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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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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곳곳에 헤밍웨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를테면 올드 아바나의 ‘맘보스 문도스 호텔’ 511호. 1932∼39년 헤밍웨이가 사용했다는 객실이다. 대작가의 방치고 소박했다. 단출한 싱글 침대와 늙은 타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반면 아바나 외곽의 농장 저택은 호사스러웠다. 헤밍웨이는 39년부터 1961년 쿠바혁명 직후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전망대와 수영장이 있는 이 저택에서 귀족처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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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꼬히마르는 한갓진 포구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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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에서 10㎞ 떨어진 작은 포구마을 꼬히마르는 『노인과 바다』의 실재 현장이다. 『노인과 바다』는 꼬히마르의 늙은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의 일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소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바다로 나가기 전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달랜 카페가 현실의 포구마을에도 있다. 여기도 관광객으로 미어터진다.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입양 쿠바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노벨상 메달도 쿠바의 한 성당에 기증했다. 헤밍웨이에게 쿠바는 그만큼 각별했다. 쿠바도 헤밍웨이가 각별하다. 아니 고맙다. 미국으로부터 가장 호된 시련을 받은 나라가 가장 미국적인 작가의 추억을 팔아 연명한다. “에스따 에스 쿠바.”

체 게바라 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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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혁명광장에 있는 내무부 건물은 체 게바라 얼굴을 내걸고 있는 대표적인 포토 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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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어디에서나 체 게바라는 임하셨다. 익히 들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엽서·접시·티셔츠·책·포스터·시가박스·열쇠고리 등등 게바라 얼굴로 도배된 기념품 가게의 풍경은 진즉에 각오한 바였다. 아바나 혁명광장의 내무부 건물 외벽에 거대한 게바라 얼굴이 걸려 있는 것도 사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네 이발소와 과일가게도 게바라를 모시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게바라가 그려진 쿠바인 화폐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팔리는 현실도 어처구니없었다. 게바라는 외국인에게 돌하르방처럼 흔한 기념품이었고, 쿠바인에게는 꽃보다 뻔한 인테리어 장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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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중앙공원에 있는 알리시아 알론소 아바나 대극장. 1915년 건설한 쿠바의 랜드마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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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1928∼67)는 원래 쿠바 사람이 아니다(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혁명 이후 쿠바 국적을 획득했다). 평생 쿠바를 위해 살았던 것도 아니다. 게바라가 쿠바에서 활동한 기간은 8년 정도다. 멕시코에서 들어간 1956년 12월부터 콩고로 넘어간 1965년 4월까지가 쿠바 체류기간이다. 게바라는 1967년 10월 볼리비아에서 총살됐다. 그의 시신은 30년간 볼리비아에 숨겨졌다가 1997년 쿠바로 옮겨졌다.

평생을 돌아다닌 게바라가 끝내 돌아와 누운 곳이 쿠바 중부의 내륙도시 산타 끌라라다. 체 게바라 추모관에 그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추모관 내부는 여느 관광지와 달랐다. 자못 엄숙했다. 사진 촬영도 일절 금지됐다. 게바라 순례의 종점다웠다.

쿠바에서 그렇게 많은 게바라 사진을 봤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장의 사진은 보지 못했다. 두 눈 부릅뜬 채 누운 청년 전사. 총살당한 직후 게바라의 사진이다. 혁명의 추억을 내다 파는 처지다 보니 슬픈 결말은 감추고 싶었나 보다. “에스따 에스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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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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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쿠바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에어캐나다를 이용해 캐나다 토론토에서 갈아타는 게 가장 편하다. 인천에서 캐나다까지 12∼14시간, 토론토에서 아바나까지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토론토 공항에서 3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쿠바는 외국인과 내국인 화폐가 따로 있다. 외국인 화폐의 단위는 쿡(CUC). 1쿡이 1달러다. 환전은 아바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하는 게 편하다. 통신 사정이 안 좋다. 로밍을 해도 통화가 안될 때가 많다. 문자 메시지도 단문만 가능하다. 공원·호텔 등 특정 장소에서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인터넷 카드를 미리 사야 한다. 1쿡짜리 카드를 사면 1시간 쓸 수 있다. 쿠바 여행은 겨울이 좋다. 쿠바의 여름은 너무 덥고 비가 자주 내린다.



쿠바=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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