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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관종’ 변호사의 유튜버 도전기…“2분짜리 하나 만드는데 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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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카메라, 마이크, 삼각대, 조명은 필수

이것저것 사고 나니 100만원 훌쩍

유튜브에서 ‘동영상 편집’ 배워

직장인 일상 ‘브이로그’ 인기

타인 일상 엿보며 공감·소통

조회 수 많으면 광고 붙지만

구독자 확보하기 쉽지 않아

일부 직장에선 겸직 금지 논란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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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유튜브 한번 해봐.” “브이로그 찍어봐.” 최근 모임에 가면 꼭 한번씩 나오는 말이다. ‘직장인 브이로그’가 인기라는데 나도 ‘기자 브이로그’를 해볼까? 그러나 실제로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자막을 달아 업로드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영상 제작에 대해 전혀 몰랐던 5년차 변호사가 유튜브 영상 제작을 하는 실제 과정을 따라가보며, 최근의 직장인 브이로그 바람을 짚어봤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오늘은 신문사와 인터뷰를 합니다. 잘하고 올게요.”

“인터뷰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신문에 나오면 읽어봐주세요. 안녕.”

지난 12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코리아의 한 사무실. 현창윤 변호사는 기자가 취재를 하기 위해 사무실에 도착한 순간에도, 취재가 끝난 순간에도 카메라를 켰다. 언론사의 취재 요청에 응하는 것도, 인터뷰를 하는 것도 그의 업무이자 일상이다.

유튜브에서 ‘직업 이름+브이로그’를 검색해보면 변호사, 의사, 교사, 승무원, 약사, 농부 등 다양한 직업군의 브이로그가 검색된다. 브이로그란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콘텐츠다. 특히 최근에는 변호사나 의사, 약사 등 전문직들도 유튜브에 뛰어들고 있다.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도 많고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알려주는 콘텐츠들도 있다. 유튜브를 통해서 실제 사건 수임이나 병원 내원으로 이어지는 ‘홍보 효과’가 크지는 않지만, ‘소통과 공감’을 위해 유튜브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방식이 이미지나 글이 아닌 영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현창윤 변호사의 유튜버 도전기

현창윤 변호사는 지난해 여름, 네이버 블로그를 열었다. 법률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고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글을 써서 올려도 네이버에서 검색이 잘되지 않거나 한참 아래에 노출됐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상위에 보이는 글들은 온라인 마케팅 업체에서 변호사 대신 작성한 광고성 글이 많았다. 그는 다른 플랫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은 이미지 위주라 법률 정보가 주된 내용인 자신과는 맞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글을 올리기엔 좋았으나 검색 기능이 약해서 시간이 지나면 정보가 묻힐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는 “광고에 묻히지 않고 내용을 쌓아가기엔 유튜브가 적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변호사는 영상 제작 경험이 전혀 없었다.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편집해본 적도 없었다. 일단은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촬영해봤다. 일주일 동안 틈틈이 찍었다. 편집은 유튜브에서 ‘동영상 편집 가이드’를 보고 배웠다. ‘파워 디렉터 15’라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받아서 썼다. 배우는 데 3시간, 편집하는 데 2시간이 걸려 2분32초짜리 브이로그를 만들었다. 채널 이름은 ‘현변 티브이(TV)’로 정했다. 지난달 12일 첫 브이로그를 올렸다.

이후 현 변호사는 사회 초년생을 위한 법률 정보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에 대한 법률 해설을 메인 콘텐츠로 정했다. 그리고 자신 같은 왕초보가 유튜브를 무작정 시작할 수 있도록 ‘유튜브 무작정 시작하기’와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서브 콘텐츠로 정했다.

현 변호사는 영상의 품질을 향상시키려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카메라, 마이크, 삼각대, 조명은 필수다. 카메라는 많은 유튜버가 추천한 캐논 EOS m50 미러리스 카메라로 구입했다(기본 렌즈 포함 75만원). 가벼운데다 액정을 셀카 모드로 바꿀 수 있어 내 얼굴을 체크하면서 영상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향성 마이크(2만2천원)와 핀마이크(1만2천원), 고정용 삼각대(5천원), ‘고릴라 포드’라고 불리는 어디든 세울 수 있는 미니 삼각대(4만5천원), 43사이즈 조명(7만원), 22사이즈 조명(4만원), 조명용 삼각대(2만원)까지 갖췄다. 브이로그는 걷거나 운전하면서 찍는 경우도 많아 흔들림 방지 카메라(45만원)도 샀다.

편집 프로그램은 ‘프리미어 프로’로 바꿨다.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그램이라 주말마다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영상이 많아 재촬영을 두세번씩 하다 보니 10분짜리를 찍는 데 3~4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브이로그는 며칠에 걸쳐 틈틈이 찍어뒀다. 그는 “편집 시간은 끝이 없다”며 “아직 편집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법률 콘텐츠 특성상 주제가 무겁기 때문에 시청자를 잡아둘 만한 재미 요소를 넣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여행 중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에서 추락해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박아무개씨를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때 현 변호사는 ‘여행 중인 재외국민에 대한 치료비 또는 국내 이송비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있는가’라는 주제로 5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또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 마약류 유통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일자, 현 변호사는 ‘데이트 강간 약물(물뽕)이 무엇이고 어떻게 처벌되는가’를 주제로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사회적 핫이슈를 다루자 현변 티브이 조회 수가 늘었다.

하지만 구독자 수를 늘리는 건 쉽지 않았다. 채널로 시청자가 유입이 돼도 그 영상만 보고 나갈 뿐 지속적으로 받아 보는 구독자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여서다. 현 변호사는 ‘커피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구독을 눌러주고 이메일 주소를 남기면 몇명을 뽑아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것이다. 이는 흔히 유튜버들이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현 변호사는 유튜브를 시작한 지 한달이 된 현재, 동영상 10개를 올렸고 구독자는 260명이다. 법률 지식, 유튜브 촬영 정보 등보다 브이로그 조회 수가 더 많다. 현 변호사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유튜브를 하는 데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유튜브로 유의미한 광고 수익을 얻으려면 구독자가 수만명은 돼야 한다. 변호사 영업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 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유튜브 할 시간에 사건 하나 더 맡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가 유튜버에 도전한 건 변호사로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채널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관종’(관심 종자) 아니냐고요? 관종 맞죠. 관심을 보여주고 댓글 달아주고 응원해주는 분들 보면 힘이 납니다.”(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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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브이로그 인기, 왜?

유튜브 키워드 검색 도구인 ‘키워드풀’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 4200회에 그친 브이로그 검색량은 2018년 11월 2448% 증가한 10만7천회로 늘어났다. 브이로그 콘텐츠 증가에 따른 소비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브이로그 종류는 아르바이트, 먹방, 일상 등 다양하게 분포돼 있지만 직장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으뜸이다.

직장인의 브이로그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드라마나 영화 속 연출된 이미지가 아니라 직장인의 진짜 일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직업이나 회사에 대한 생생한 정보도 줄 수 있다. 다른 직군은 ‘이렇게 일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몰랐던 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같은 직군끼리는 서로 공감대를 나눈다. 댓글 창에서는 구독자들끼리 서로 교류하기도 한다. 그 직업을 갖고 싶은 예비 직업인이나 수험생들에게는 사전 정보를 줄 수 있다. 직장인 ‘공부법’도 인기다. 지난해 11월 ‘의사 공부법’을 올린 ‘긍정에너지토리파’의 공부법은 조회 수 85만회가 넘었고, 지난달 ‘변호사 공부법’을 올린 ‘킴변’의 영상은 한달 만에 조회 수 45만회를 돌파했다.

출퇴근길에 다양한 직종의 브이로그를 본다는 김민정씨는 “처음엔 변호사의 일상은 어떤가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공부법이나 법률 정보까지 보게 됐다”며 “당장 나에게 닥친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내가 수험생이 아니라도 도움이 되고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엔 다양한 직종의 일상 브이로그를 보는데 나만 힘들게 일하는 게 아니라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싶어 위로가 된다”고 했다.

전문직까지 유튜브에 뛰어드는 이유는 유튜브가 전문직이 활동하기 좋은 검색 구조를 갖췄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네이버 블로그는 콘텐츠의 질과 상관없이 자주 글을 올려야 상위에 노출되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광고를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올리는 글들이 위에 뜨는 문제가 생긴다. 반면 유튜브는 사용자의 시청 기록에 기반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주고, 몇년 전에 업로드한 콘텐츠도 검색이 된다. 예를 들어 포털 사이트에서 ‘숙취 해소’라고 검색하면 상위에 보이는 글 대부분이 숙취 해소제 광고이고, 최근에 작성된 글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약사들이 직접 올린 영상들이 상위에 뜬다. ‘약사가 먹는 숙취 해소제’라는 주제로 각종 증상에 따른 다양한 약의 조합을 추천해준다. 업로드한 지 1년이 지난 것도 상위에 뜬다.

유튜버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어떤 직업을 가졌든 꾸준히 내용을 쌓아가야 한다. 현창윤 변호사는 “검색이나 추천 영상에 떠서 한번 클릭하고 나가는 콘텐츠가 ‘유입 콘텐츠’라면 지속적으로 채널을 구독하게 하는 건 ‘유지 콘텐츠’다. 유지가 되려면 유튜버 자체의 매력과 그 채널만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며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법률 해설로 유입시킨 뒤 브이로그나 사회 초년생을 위한 법률 팁으로 꾸준히 유지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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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직 금지 논란도

브이로그 구독자가 일정 수를 넘어가면 돈도 벌 수 있다. 일종의 ‘디지털 부업’인 셈이다. 유튜브는 영상 중간에 광고를 넣어 조회 수에 따라 돈을 받는다. 보통 광고 조회 수 1회당 1원을 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상이 길면 광고를 추가로 넣을 수 있고 광고 수익이 조회 수 1회당 2~3원이 될 수도 있다. 아무나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최근 1년간 구독자 1천명, 시청 시간 4천시간 이상인 채널에만 광고를 붙일 수 있게 한다. 광고 수익은 유튜브와 유튜버가 45 대 55로 나눈다. 당장은 큰돈이 안 되지만 조회 수가 꾸준히 유지되고 동영상이 쌓이면 수입이 생기게 된다.

실제 현실에선 몇몇 유명 유튜버를 제외하고는 브이로그로 수익을 내는 직장인이 많지 않지만 유튜브의 ‘잠재적 수익성’ 때문에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교사가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교육자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교사의 유튜브 활동을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국가공무원법 64조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등에 따르면 소속 기관장, 즉 소속 학교 교장의 허가만 있다면 교사도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버 겸직이 가능하다. 다만 공무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거나 담당 직무 수행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불가능하다.

겸직을 신고하고 당당하게 유튜버가 되는 공무원이나 직장인도 있지만, 국내 30대 기업 대부분에서 ‘영리활동 겸업’을 금지한다는 사내규칙(내규)을 채택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눈치를 보는 직장인이 많다. 그동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이 유행했지만 회사가 이를 통제할 명분은 없었다. 하지만 유튜브에선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통제의 구실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 유튜버들은 광고를 붙이지 않거나, 기업 이미지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 콘텐츠 위주의 브이로그를 선택한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정현진(가명)씨는 “사내에서는 카메라 사용 금지라서 직장인 브이로그는 꿈도 못 꾼다”며 “만약 유튜브를 하더라도 회사에선 영상을 촬영하지 않을 것이고, 내 얼굴이나 신상 정보도 숨기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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