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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바보야, 문제는 단지야!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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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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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2024년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51.5%는 아파트에 거주한다. 아파트는 전 세계에 통용되는 적층식 공동주택방식이지만 한국의 아파트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단지식으로 개발됐다는 점이다(다른 나라는 공공도로에 면한 개별 건물식이 일반적이다). 아파트 단지는 1960~70년대 도시팽창기 급격히 유입되는 인구를 수용할 방책이 다급했지만,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여력과 재정이 부족했던 주택 당국이 생각해 낸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자기 집값뿐 아니라 단지 내부의 도로, 공원, 놀이터, 편의시설 공사비와 유지관리비를 정부 대신 떠안은 구매자도 몇 년 있으면 올라있는 집값 때문에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였다. 정부와 소비자(그리고 모델하우스와 청약으로 쉽게 아파트를 지었던 건설회사까지)의 암묵적 합의 속에 강남이 개발되었고 위성 신도시가 탄생했으며 서울은 4배나 몸집을 불렸다. 이것이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실체다.



개발 초창기에는 산발적인 중소규모 단지 위주였지만, 2000년대를 기점으로 주요 건설사가 저마다의 브랜드를 내걸고 단지별로 환경 요소나 인테리어 요소 등을 특화해 체계적으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피트니스 클럽이나 수영장, 골프 연습장 같은 고급 커뮤니티 시설이 마련되는 단지도 등장했다. 단지별로 특화된 시설이 만들어지자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각기 단지마다 담을 쌓고 타단지 주민의 출입을 제한하는 식으로 서로 단절되더니, 결국 집값 경쟁 구도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에게(특히 당국에게) 용이했던 단지 개발방식이 동네끼리 단절되고 이웃끼리 서로 담을 쌓고 경쟁하게 만든 숨은 원인이었던 것이다(‘아파트 한국사회’. 박인석).



공공이 책임을 방기한 대가는 한세대가 지나서야 드러났고 그것도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초창기 단지들의 재개발 주기가 돌아오자 단절과 경쟁의 메커니즘은 몸집을 눈덩이처럼 불리기 시작한다. 사업 부지가 넓어지면 용적률이 증가해 건설가능 면적이 늘어나는 구조이니,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주변 단지와 인근 부지까지 흡수해 몸집을 불린 대규모 조합이 탄생했다. 서로 적대적으로 변한 거대 단지가 도시 곳곳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게임의 규칙이 바뀐다. 겨우 삼년전만 해도 고이자 시대가 도래할지 예상한 사람은 드물다. 아파트단지 재개발은 장기간 지속된 저이자·저물가 시대의 산물이다. 기존 아파트를 부수고 새 건물을 더 크게 지어 잉여세대를 일반(외부인)에게 분양(판매)하면 조합원(기존 주민)이 헌집을 새집으로 바꾸는 효과와 더불어 자산증대 효과까지 얻는다는 점에서 지난 20년간 한국인을 열광시켰다. 이 공식이 고이자·고물가 시대를 만나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존 세대수보다 더 많이 지어봐야 기대한 금액에 일반분양이 될 거란 보장이 사라지니 사업성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한 건설현장마저 자재비 상승으로 건설업체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조합과의 갈등 끝에 취소되는 곳도 속출한다.



이 마당에 (새집을 바라고 내준) 자기 집과 (배당금을 기대하고 선지불한) 건설비 부담을 오롯이 떠안은, 조합원이라 불리는 시민은 (주식처럼 이익을 바라고 취한 개인 선택이었으니) 손해를 감당하는 게 당연한 걸까. 왜 많은 시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합이라 불리는 이익단체의 일원이 된 걸까. 왜 이 와중에도 원인 제공자이자 설계자인 당국은 언제나 그랬듯 책임에서 비켜나 있는 걸까. 이 모든 답은 바로 이 문장 속에 있다. 바보야, 문제는 단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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