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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독일 '분데스리가'

한국 첫 스포츠-연예 스타 커플… 곤경 이겨내니 더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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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 커플]허정무-최미나 부부

동아일보

한국 최초의 스포츠-연예 스타 커플인 허정무-최미나 부부가 서울 반포동 자택 거실에서 축구공을 하나씩 안은 채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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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집 센 사람이 또 있을까. 정말 놀랐어요.”

지쳐서 돌아온 남편은 무뚝뚝하기만 했다. 모처럼 시작된 대화가 말다툼으로 이어지는 일도 잦았다. ‘남들은 결혼하면 깨가 쏟아진다던데….’ 아내는 갓 태어난 큰딸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한국이었다면 친정에 가거나 친구라도 만났겠지만, 말도 안 통하는 이역만리 네덜란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참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을 때 최 씨는 깨달았다. ‘성격 맞추기 게임’이 드디어 끝났다고.

○ 한국 최초의 스포츠-연예 스타 커플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64)와 최미나(본명 최종숙·65) 윌러스 대표가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어느 날이었다. 연세대 2학년이던 허 씨는 한국 축구의 기대주로 떠오르던 중이었고, 최 씨는 국내 첫 ‘여성 MC’로 활약하던 때였다. 최 씨가 임성훈 MC(69)와 함께 진행하던 ‘가요올림픽’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허 씨가 게스트로 초대됐다. 형식적인 인사만 나눴던 두 사람은 3년 뒤 방송사 스포츠 기자였던 최동철 씨(76)가 집으로 초대해 만남을 주선한 덕분에 다시 만났다.

“인상은 좋았지만 한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헤어지면서 ‘연락해도 될까요’ 했더니 ‘그러세요. 전화하세요’라며 연락처를 알려 주더라고요.”(허)

나름 ‘약속’이라고 생각한 허 씨는 며칠 후 전화를 했다. 통화는 되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전화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너무 화가 났어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죠. 오기로 전화를 계속해 결국 연결이 됐어요. ‘싫으면 처음부터 싫다고 하지. 왜 약속을 했느냐. 그렇게 살지 마라’고 했더니 ‘미안하다, 만나자’고 하더군요.”

며칠 뒤 최 씨가 일하는 방송국 근처 커피숍에서 둘은 만났다. ‘수틀리면 망신이나 주고 와야지’라는 생각으로 나갔던 허 씨는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웃으며 얘기를 건네는 최 씨에게 매력을 느꼈고 교제를 시작했다.

○ “팬티만 입고 뛰는 사람” 반대를 넘어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팀에서 잠시 활약했던 허 씨는 첫 월급이 10만5000원이었다고 기억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최 씨의 월수입은 300만 원에 달하던 때였다. 프로축구도 출범하기 전이었고, 최 씨는 결혼하면 방송 활동을 그만둘 계획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없었을까.

“축구를 못 하면 배추 장사를 해서라도 가족은 지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축구를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최)

“아내는 좋다고 했지만 장모님은 결혼을 반대하셨어요. 언니 둘이 있는데 의사, 교수와 결혼했거든요. 이 사람에게 그러셨대요. ‘하필이면 망측하게 팬티 바람으로 뛰는 사람과 왜 결혼을 하느냐’고.”(허)

아내가 믿었던 대로 허 씨는 불세출의 축구 스타가 됐다.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남편은 1980년 7월 결혼식을 올린 뒤 닷새 후 네덜란드로 떠났고, 얼마 있다 아내도 합류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차범근(66)에 이어 한국 선수 두 번째로 유럽 무대를 밟은 허정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3년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프로축구 울산에서 3년을 더 뛴 뒤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지금까지 유일무이한 ‘해외 월드컵 16강 진출’(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이끌었다.

○ 결혼은… 서로의 곤경을 같이 치러주는 것

결혼 후 가사와 육아에 전념했던 최 씨는 1990년대 후반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축구계를 잠시 떠나 있던 남편이 모았던 재산을 모두 투자해 운영했던 공장이 화재로 날아간 데다 살던 집까지 보증을 서는 바람에 거리에 나앉을 신세가 됐던 게 계기였다.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려고 보증을 부탁한 사람의 집을 계속 찾아갔어요. 어느 날 동생과 둘이 그 집 거실에서 기다리는데 문득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차라리 이 시간에 돈을 벌자는 생각이 들었어요.”(최)

“집 문제를 해결한 뒤 아는 분으로부터 돈을 빌렸고, 그걸로 아내가 향수 판매 사업을 시작한 거죠. 이 사람은 어릴 때 꿈이 조향사였을 정도로 향수를 좋아했어요.”(허)

최 씨는 사업이 한창 성장기에 있을 때 2년 동안 ‘휴업’을 했다. 남편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감독을 맡고 있을 때였다.

“기사 댓글을 보다 깜짝 놀랐어요. ‘남편은 국가대표 감독인데 아내는 수입 향수를 팔다니 말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죠. ‘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구나’ 하며 사업을 중단했죠. 남편한테 누를 끼치기 싫었거든요.”(최)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결혼은 서로의 곤경을 같이 치러주는 것’이라고.

○ ‘고집 센 남편’이 외식을 고집하는 까닭은

이 부부는 외식을 자주 한다고 했다. 요리를 잘하는 최 씨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려고 하면 허 씨는 “나가자”며 손을 잡아끈다.

“집에서 먹으면 준비하는 것도, 치우는 것도 시간이 꽤 걸려요. 그렇다고 돈을 아끼는 것도 아니에요. 몇천 원짜리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밖에서 먹는 게 여러모로 편하죠.”(허)

“돈을 아낀다고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외식을 하면 여러 사람 불러서 같이 먹거든요. 그러고 보면 남편은 한 번도 음식 타박을 한 적이 없어요. 반찬이 많으면 되레 뭐라고 하죠. 집에서 먹지 말자는 건, 제가 힘들까 봐 그러는 거예요.”(최)

남편의 습관 가운데 하나는 ‘잠깐 신은 양말 다시 신기’다. 아내는 ‘1시간을 신어도 빨아야 된다’는 주의다.

“애 아빠가 옷차림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써요. 집에서 입던 차림 그대로 외출하고, 돌아와서도 빨래를 잘 안 내놔요. 양말은 침대 밑에 숨겨 놓고….”(최)

“아내가 일을 과하게 하는 편이에요. 못도 본인이 박아요. 내가 하면 요령 없이 힘만 써서 망가뜨린다나. 오죽하면 딸들이 엄마 생일에 ‘공구 세트’를 선물했겠어요. 일을 줄여주려고 빨래를 안 내놓는 건데 그것도 몰라주나.”(허)

아내의 일을 줄여주고 싶으면 빨래를 직접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허 씨는 “세탁기도 못 돌린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최근 남편은 양말을 또 숨겨 놨다가 핀잔을 들었다.

“화란이 아빠, 제발 말 좀 들어요. 나중에 나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라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바로 당신 따라갈 거니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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