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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더 많이 빌리고, 더 오래 못갚는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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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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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나빠지면서 맥주 한잔 하러 오는 손님이 줄었어요.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 등 비용 문제가 아니라 매출 자체가 쪼그라들었어요. 지금은 빚을 내서 가게 문을 열고 있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는 폐업해야지요."(서울 동대문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

경기 둔화와 최저임금 인상, 대출금리 인상 등 자영업자들을 둘러싼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반면 자영업자들이 금융회사들로부터 빌리는 부채 규모와 연체율은 계속 치솟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게 되면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권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7일 나이스평가정보가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금융업권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 중 돈을 갚지 못한 채무 불이행자 비율은 2017년 말 1.32%에서 지난해 1분기 1.36%, 2분기 1.39%, 3분기 1.41%, 4분기 1.43%로 꾸준히 증가했다. 비율로는 아직 큰 수치가 아니지만 추세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문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전체 자영업자와 여기에서 차지하는 채무 불이행자 비율이 동시에 늘어난다는 건 상황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통상 새로 돈을 빌리는 사람 가운데선 채무 불이행자 비율이 높지 않으므로 예전에 돈을 빌렸던 사람들 상황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연령대인 30·40대의 채무 불이행자 비율 상승폭이 크다는 점도 걱정된다. 자료에 따르면 40대 채무 불이행자 비율은 2017년 말 1.41%에서 작년 말 1.65%로 0.24%포인트 증가했고 30대(0.12%포인트 증가)가 뒤를 이었다. 업권별로는 카드업계 채무 불이행자 비율 상승폭이 0.41%포인트로 가장 컸고 캐피털 0.24%포인트, 은행 0.14%포인트, 상호금융 0.09%포인트 등 순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자영업자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상호금융·저축은행권으로 몰리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상호금융사들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액은 2017년 9월과 비교해 38.0% 급증했다. 저축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역시 1년여 만에 37.6%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증가액(9.6%)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금리도 오르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10~12월 취급한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4.92%로 1년 전(4.77%)보다 0.15%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물적담보대출 평균금리 역시 3.55%에서 3.79%로 0.24%포인트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정부도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말 열린 '자영업자 금융지원대책 점검회의'에서 "최근 개인사업자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업권별로는 상호금융권과 저축은행권 증가율이 높았다"며 "세부 정보를 살피고 잠재 위험은 무엇인지 등을 점검·파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1분기 중 업권별로 부동산·임대업 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확정토록 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전 금융업권이 도입한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도 점검한다. RTI는 부동산·임대업 임대수익이 대출이자 상환액보다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 위한 지표다. 주택은 1.25배, 비주택은 1.5배가 넘어야 대출을 해준다.

반면 임대업 이외 사업자에 대해선 필요한 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책은행 등을 통해 자영업자에게 특화된 특별대출상품을 만드는 등 조일 곳은 조이고 풀 곳은 푸는 정교한 정책을 펼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최 의원은 "전체 연체율이 낮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이 무너지면 가계부채 전반에 걸친 위기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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