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기고] `북핵 스몰딜→한미동맹 약화`는 근거 없는 예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최근 북한 핵문제 해법과 관련하여 '빅딜'이니 '스몰딜'이니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이는 '스몰딜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 정부는 '스몰딜을 하려는 게 아니다'고 부인한다. 불필요한 논란이다. '빅딜' '스몰딜' 논란은 1993~1994년 1차 핵위기 때 나왔던 '큰 보따리(빅패키지)' '작은 보따리(스몰팩키지)'를 연상시킨다. 당시 '스몰패키지'는 '빅패키지'로 들어가는 열쇠였고, 지금의 '스몰딜'도 '빅딜'의 일부로서 논의되고 있다.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그것을 두고 부분적 비핵화라거나 최악의 거래라 비판하면서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들린다.

돌이켜 보면,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전략은 '선 핵문제 해결, 후 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라는 일괄해결 방식에서 '단계적·동시적' 접근으로 방법을 바꾸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시도되었던 '신고→검증→폐기'가 아니라 신뢰를 구축하면서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에 따라 핵무기, 핵물질, 대량살상무기(WMD) 시설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에 따라 1월 17~18일 김영철 부장이 백악관을 방문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2월 하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고 트윗을 날렸다.

1991년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을 만들어 놓고도 한반도 평화 정착에 실패했다. 사반세기가 지나 어쩌면 우리에게 다시 한번 그 천재일우의 기회가 오고 있는지 모른다. 1차 핵위기 이후 미국이 북핵 문제를 다루어온 초점은 확산 방지에 놓여 있었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대통령의 관심을 지금처럼 많이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남북의 지도자가 지금처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한반도 안보 문제를 논의한 적도 없었다.

'스몰딜'을 하고 나면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주한미군 철수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한다. 우려를 이해하지만, 근거 없는 예단이다.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이 안보 상황을 감안하여 운용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주한미군을 포함한 서태평양 전진배치를 점차 축소한다는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을 발표했다. 그러나 1차 핵위기를 거치면서 주한미군 감축은 이행이 중단되었고, 1995년 2월 클린턴 행정부는 '동아태전략보고서'를 통해 서태평양 10만 병력 유지계획을 재확인했다. 안보 상황이 바뀌면 동맹운용도 바뀐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긴 호흡에서 볼 때, 북한이 바뀌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지난해 6월 김정은 위원장은 '미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와 함께 밥 먹고 악수하고 산책하고 회담하고 앞으로 잘 지내자고 합의했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에 관계되는 사건이다. 그것을 북한 전체 주민에게 공개했다. 물론,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고 못 박을 수 없듯이, 북한의 변화가 앞으로만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 것도 과도하다.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했지만, 10년 후 톈안먼사건을 겪으면서 '베이징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가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지 않도록 분명한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기에 대한 확인은 물론, 검증을 수반한 영변핵시설 폐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운신의 공간을 주어야 한다. 무언가 상응하는 조치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유엔안보리 제재나 미국의 독자제재를 완화하는 데는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철도연결 등 남북관계의 맥락에서 방안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과거의 실패를 더듬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때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