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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오래 전 ‘이날’]2월18일 매를 들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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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2월18일 ‘매를 들 수 있는 권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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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선생님에게 매를 맞아본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초등·중학생 때 30㎝ 자로 손바닥을 맞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주로 숙제를 안 했거나 준비물을 깜빡했다는 것이 체벌의 이유였습니다. 직접 체벌이 금지된 오늘날 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지요.

20년 전 오늘 경향신문 2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당시 교사의 ‘체벌권’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국회가 ‘교사 체벌권’의 법제화를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체벌할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이지요. 지금 보면 뜨악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권리를 법제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여야 의원들은 최근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교사들의 학생 체벌과 관련, 교육적 필요성과 적절성에 따라 교사의 체벌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중략)이 개정안은 현재 교장에게만 주어진 학생지도권 조항에 ‘교사가 학생에게 체벌을 할 때는 교육적 필요성과 적절성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을 추가, 교사에게 일정 부분의 체벌권을 인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김일주 당시 의원은 개정 추진 이유에 대해 “학생의 징계에 대한 현행 규정이 불명확해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한 합당한 체벌까지도 금지되고 있다”며 “학생 지도에 대한 규정을 보완, 교권과 학생의 인권을 조화롭게 높이기 위해 발판을 마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체벌 법제화에 대한 반대와 함께 청소년 인권신장을 촉구하는 운동도 커졌습니다.

이듬해인 2000년 1월 헌법재판소는 교사의 체벌 재량권을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2002년 6월에는 교육부가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을 통해 구체적인 체벌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벌점제도 도입했습니다. 그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부의 학교생활규정 예시안 개정을 권고했지만 교육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4년 후인 2006년 체벌이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습니다. 대구의 한 고교 교사가 지각한 학생을 200대 때린 것이 알려지면서 전국이 들끓었습니다. 교육부는 학생체벌 금지 법제화를 위한 여론 수렴에 착수했고, 국회에서 학생 체벌 금지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2009년에는 경기도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교내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유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학생인권조례’를 공식 선포했습니다.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5년이 지난 2011년입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관련 조항이 개정되면서이지요. 시행령 제31조 제8항은 “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에 따라 학생을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후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서울, 광주 등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습니다. 이를 통해 직접 체벌이 아니더라도 학생에게 인격적 모멸감이나 신체적 고통을 주는 간접 체벌도 허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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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학교에서 체벌은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안타깝게도 시행령과 학생인권조례가 무색해지는 사례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교내 운동부에서 공공연히 체벌이 이뤄지고 있고, 체벌을 경험했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2017년에는 전국에서 처음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경기도 내 중학생 4명 중 1명이 교사에게 체벌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양손 들고 서 있기’, ‘오리걸음’ 등 간접 체벌에 관한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고, 체벌 금지로 인해 교권이 하락했다는 주장 또한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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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청소년페미니즘모임 등 49개 청소년·여성단체가 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학교 성폭력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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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이 아니더라도 교내 폭력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성폭력이 그것인데요. 학생들이 자신이 경험한 성희롱 등 인권 침해를 제보 및 폭로하는 ‘스쿨 미투’는 지난해 불붙은 이후 지금까지 그 불이 쉬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요구에 학교와 정부의 대응은 아직 미흡하기만 합니다. 문제 해결 대신 ‘주동자 색출’에 나서거나 폭로를 멈추라고 종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6일은 스쿨 미투가 시작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1년이 지나도록 변한 것이 없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울려펴졌습니다. 폭력 없는 학교, 교내 민주주의는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학생들의 질문에 어른들은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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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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