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매경데스크] 미국, 화웨이 때리기의 숨은 진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둘러싼 보안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화웨이가 미국 애플과 아마존에 서버 장비를 납품하면서 스파이웨어를 몰래 심었다가 발각됐다는 미확인 보도가 지난해 터지더니 올해 초엔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가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됐다. 미국 사법당국이 미국 화웨이 연구소를 압수수색하는가 하면 미국 대학들이 화웨이 자금을 잇달아 거부하고 있다. 호주 등 미국 우방국에서는 주요 설비에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동유럽 순방길에 "화웨이 장비가 우리의 중요한 미국 시스템과 함께 쓰이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면서 '반(反)화웨이' 전선이 계속 확대되는 모양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2019년 3월 세계 최초로 5세대(G) 이동통신 서비스 상용화에 나선다. 통신 3사 가운데 SK텔레콤과 KT는 화웨이 장비 없이 삼성전자와 노키아, 에릭슨 장비로 5G용 기지국을 구축 중이다. 하지만 LG유플러스는 삼성전자, 노키아와 함께 화웨이 장비를 이용해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에 5G 기지국을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5G 시대 개막은 단순히 통신망 속도가 현재 LTE(4G) 서비스보다 10~100배 증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5G 세상은 자율주행차와 공장설비 등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3G, 4G가 바꿔놓은 세상과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수백억 개가 되는 개인화된 기기들이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를 통해 서로 연결되며 인공지능(AI)을 통해 개인 정보 데이터를 활용한 무수한 비즈니스 기회가 열릴 것이다. 증기선과 전기 발명, 인간의 달 착륙, 인터넷 등과 비견되는, 세상을 바꾸고 산업 전반을 뒤흔들 본질적인 기술인 5G는 경제적 가치만 20조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고서는 지난해 1월 중국의 5G 기술력이 이미 미국보다 우월한 것으로 평가했다. 전 세계 모바일 통신기기의 75%와 컴퓨터의 90%가 중국에서 제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보고서는 또 중국산 5G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할수록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위험 요소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미국이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중국산 기술과 기업에 의존하지 않을 것을 추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10월 버라이즌이 고정형 방식의 5G 서비스를 상용화하는 등 자체 5G 투자에 적극 나서는 한편 중국계 정보기술(IT) 기업인 ZTE에 이어 화웨이 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이 같은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도 화웨이 때리기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자유무역과 개방 경제를 중시하는 국가다. 중국이 사드(THAAD)를 빌미로 과거에 우리를 괴롭혔다고 한들 화웨이가 5G 장비에 스파이웨어를 심고 국제 규범을 위반하고 국내법을 어겼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보호무역주의나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특정 기업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섣부른 진영 논리나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5G 보안 이슈는 화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한 라지브 수리 노키아 회장은 "5G 통신은 자율주행이나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기 때문에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며 "특히 5G는 기지국 단위에서도 데이터를 처리하기 때문에 보안사고 위험성이 더 크다. 특정 기업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작은 보안사고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해킹과 보안 문제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문제이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보안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는 성향이 있다. 중국산 장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고 해서 보안 위험이 낮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정부도 5G 통신보안 문제는 개별 통신업체에 맡겨둘 일이라는 안일한 인식에서 벗어나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화웨이 5G 장비에 문제가 있다면, 아니 그 어떤 장비나 설비에도 문제가 있다면 국가가 나서서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적인 장치를 이참에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트렌드이고, 화웨이 사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이근우 모바일부 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