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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노트북을 열며] ‘극한직업’보다 더 극한적인 자영업자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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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주정완 금융팀장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배우 류승룡의 익살과 능청에 1400만 관객이 웃음을 터트렸다. 2019년 첫 천만 영화이자 역대 코미디 영화 흥행 1위에 오른 ‘극한직업’이다. 지난 16일까지 1418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에선 마약반 형사들이 아무런 준비도, 기술도 없이 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대박’이 났다. 한꺼번에 가격을 배 이상 올려도 손님이 밀려들어 가게는 발 디딜 틈도 없다. 전국의 500만 자영업자에겐 꿈 같은 성공 스토리다.

하지만 현실에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얘기다. 실제 대다수 치킨집 주인들에겐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임대료·인건비·재료비 같은 비용은 계속 오르는데 매상은 감소 아니면 제자리걸음이다. 손쉬운 창업 아이템인 만큼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어느 학교를 나오든, 어떤 직업을 갖든 은퇴하면 결국 치킨집을 차린다는 ‘기승전-치킨집’이란 말은 한국 사회에 익숙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영화 속 성공 비결은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한 기회에 치킨을 맛있게 튀기는 재능을 발견하고, 우연히 만든 양념 소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우연히 가게를 들러 맛을 본 손님들이 입소문을 낸다.

그러면서 자영업자의 현실적인 고민은 철저히 외면한다. 영화에선 창업 전 꼭 필요한 시장조사나 상권분석 같은 준비는 전혀 없다. 재료 구입처 확보나 조리법 연구, 배달 동선 파악 같은 생존의 디테일도 찾아볼 수 없다. 만일 영화가 아니라 ‘백종원의 골목식당’이었다면 백종원씨는 호통을 치며 “이렇게 장사하면 안 돼요”라고 했을 것이다.

최근 자영업자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전혀 없다. 영화 속 치킨집 주인은 주방장과 주방보조·서빙·배달 직원들의 인건비를 걱정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인건비를 자기 주머니에서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진짜 신분은 공무원(경찰)이고, 그들의 월급은 정부에서 지급한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말도 맞다. 하지만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현실 속 자영업자의 고민이 너무 크고 깊다.

영화 속 마지막 결투 장면의 한마디에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소상공인 잘 모르나 본데 우린 다 목숨 걸고 해.” 오늘도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전쟁’ 같은 경쟁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주정완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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