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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청소·경비원 "우리도 연구소 정규직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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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자회사 진행 꼼수 중단하라!" "제대로 된 직접 고용 이행하라!"

최근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문에서는 직원 10여 명이 매일 아침 출근 시간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부 규탄 피켓 시위를 열고 있다. 이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출연연구기관에서 일하는 2700여 명의 파견·용역 직원에 대한 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출연연의 행정 사무 보조원이나 경비원, 청소원 등이다. 이런 집회는 ETRI뿐 아니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대덕단지 내 출연연 곳곳에서 지난해 말부터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일부 출연연에서는 파업도 발생하고 있다.

조선비즈

지난달 25일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문 앞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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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연연들이 기간제 연구직에 이어 이번에는 파견·용역 등 간접 고용 근로자들의 정규직 직접 고용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12월 전체 비정규직 연구원의 60% 수준인 208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 비(非)연구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은 물론이고 직접 고용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파견·용역 정규직 전환을 마친 녹색기술센터·김치연구소를 제외한 출연연 23곳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노사협상을 하고 있지만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조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달 말 1000여 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강행할 계획이다.

"연구직처럼 우리도 직접 고용" 주장하는 파견·용역 노조

현재 각 출연연은 외부 용역업체를 통해 파견·용역 근로자를 간접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과기정통부는 2017년 10월 출연연 정규직 전환 대책을 내놓을 당시, 기간제 연구직의 전환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파견·용역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규직 전환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 내용은 없었다. 단지 정부에서는 출연연이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게 아니라, 출연연 자회사가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공연구노조·공공운수노조 등 민주노총 산하 파견·용역 노조가 정규직 전환으로는 부족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기간제 연구원들이 출연연의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것을 보고, "우리도 연구직과 똑같이 직접 고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출연연에서는 "각 기관의 경상운영비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최대 2700명에 이르는 파견·용역 근로자들을 모두 직접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출연연 기관이 인건비 추가 부담도 감당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려면 기획재정부에서 별도의 정원을 배정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노조의 주장이 거세지자, 지난달에 출연연 21곳은 공동 출자 회사를 설립해 파견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이 출자 회사에서 파견직 직원의 정년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 역시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공공연구노조 관계자는 "공동 출자 회사를 통해 고용해도 처우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동 출자 회사를 만들어 그곳에 지불하는 인건비와 수수료를 감안하면, 직접 고용하는 게 오히려 비용이 적을 수 있는데 자꾸 딴소리만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규직 전환 숫자 늘리려다 문제 키워

과학기술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출연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규직 전환을 밀어붙인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출연연의 정규직 전환은 "연구 프로젝트 진행에 따라 수시로 과학 연구원을 충원해야 하는 연구 현장에서 무리하게 비정규직 연구원 상당수를 정규직으로 바꾼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파견·용역직까지 덜컥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면서 일이 커졌다. 한 출연연 인사 담당 임원은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알고도 당시 과기정통부가 청와대의 주요 정책이라는 점 때문에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무턱대고 정규직 전환 규모만 키운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근로자 처우 개선과 같은 실질적인 비정규직 대책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각 기관이 알아서 전환 문제를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아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간접 고용 근로자의 정확한 규모와 직접 고용에 따른 인건비 상승분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성일 과기정통부 연구기관지원팀장은 "정부가 나서 노사를 중재하거나 독려하면 특정 방향으로 합의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노사 협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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