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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우지경의 여행 한 잔] 맥주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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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맥주 덕후는 아니지만, 맥주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그저 이 나라 저 나라 여행하듯 세계 각국의 맥주를 맛보고 싶었다. 수업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들으며, 나라별 시음 맥주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때로는 뒤풀이에 매진해 취해버린 날도 있었지만, 맥주 종류와 양조 과정 정도는 알게 됐다. "맥주는 양조장 굴뚝 아래서 마실 때가 제일 맛있다"라는 독일 속담도.

양조장 굴뚝 아래서 마시는 맥주는 어떤 맛일까. 언제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양조장에서 맥주를 마셔보나.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가보지도 않은 양조장이 그리웠다. 맥주 학교 수료증을 받던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체코 출장 의뢰였다. 그것도 플젠의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을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1842년 10월 5일 여기서 플젠 시민들이 독일의 양조장인 요셉 그롤을 초빙해 만든 맥주가 바로 필스너 우르켈입니다. 필스너 우르켈을 제외한 맥주는 필스너 스타일일 뿐이죠."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의 다니엘 슈페일 매니저가 공기 반 자부심 반이 섞인 목소리로 일행을 맞았다. 그는 공장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시설은 현대화됐지만, 제조 공정은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고 강조했다. 맥주의 원료인 몰트와 물을 가열한 뒤 섞는 '3중 디콕션(Triple decoction)'이 필스너 우르켈만의 차별점이라 힘주어 말했다.

"놀랄 준비 됐나요? 곧 아주 특별한 시음을 하게 될 거예요." 다니엘이 스웨터를 껴입으며 말했다. 그를 따라 내려간 8m 깊이의 지하에는 커다란 오크통이 도열해 있었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저온에서 효모 발효를 위해 고안한 저장고였다. 오크통 안에는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맥주가 효모와 함께 익어가는 중 이었다.

45년이 넘게 양조장에서 일한 브루어의 손이 기울이는 섬세한 각도에 따라 황금빛 액체가 튤립 모양 잔에 담겼다. 역시 원조의 품격은 다르구나 싶었다. 갓 내린 눈처럼 순수한 거품과 호박색 맥주를 눈으로 먼저 음미한 후 경건하게 한 모금 꿀꺽!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이 다 밀려왔다. 이 감격스러운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살아 있는 효모를 영접하는 기분이랄까.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어린 맥주(Young Beer)라 색도 짙었다. 홉과 몰트가 조화를 이룬 맛이 쌉싸래하면서도 구수했다. 잔이 차츰 비어가는 게 슬플 따름이었다.

'맥주는 양조장 굴뚝 그림자 아래서 마셔야 제맛'이란 독일 속담의 뜻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때 맹렬히 다짐했다. 앞으로 기회가 있는 한,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양조장 굴뚝 그림자 아래서 전통이 빚어낸 신선한 맥주를 마셔보리라고.

[우지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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