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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갈길 먼 빅데이터 규제혁신]정보 장벽 없애야 서비스 질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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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법 개정 왜 필요한가

각 금융사들 신용정보 독점 막아야

맞춤 마케팅·컨설팅 더 정교해지고

고객도 '무작위 홍보' 피할 수 있어

금융사 "규제만 완화된다면 기회"

정부 '금융정보 통합 추진'에 촉각

이데일리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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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유현욱 김범준 기자] 국내 주요 카드사에서 빅데이터를 담당하는 A 임원은 요즘 고민이 깊다. 나라 밖에서는 이미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트렌드 때문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데이터 경제’다.

“보험사의 자동차 보험금 지급 관련 데이터와 카드사의 차량 구매 데이터를 결합하면 자동차 사고와 차량 교체 시기간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회사는 구매 의향이 있는 고객을 선별해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어느 금융사든 새로운 소비 패턴을 찾으려면 가설을 세우고 여러 데이터를 결합해 이를 입증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예컨대 자동차 사고가 단기간에 거듭되면 차량을 석 달 내에 교체할 가능성이 크니 자동차할부금융을 제안할 수 있는 식이다. 당장 부정 사용 방지시스템(FDS)과 타깃 마케팅이 정교화할 수 있다는 게 A 임원의 설명이다. 이종(異種) 데이터가 결합해 금융 상품이 개인 맞춤형으로 바뀌는 건 소비자에게도 이득이다. 그는 “고객들은 보험사나 카드사의 (상품 영업 전화를 통한) 무작위 마케팅 피로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굴지의 시중은행에서 디지털 금융을 총괄하는 B 부사장도 정부의 ‘빅데이터 드라이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데이터 경제 3법을 처리하자는) 이번 규제 완화의 방향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고객 신용정보가 금융사 독점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중요한 자산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제시되고 있어요. 개인이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시중은행이든 핀테크회사든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지요.”

◇한 임원의 토로 “금융사에 기회인데…”

그 요체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연일 강조하고 있는 ‘마이데이터’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지금은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가 분산돼 있다. 은행을 비롯해 카드사, 보험사, 통신사 다 마찬가지다. 예컨대 현재 KB국민은행의 인터넷뱅킹을 통해서는 해당 은행의 계좌 조회 및 이체, 공과금 현황 등을 볼 수 있다. KB국민카드를 함께 쓴다면 다시 해당 홈페이지에서 로그인을 해야 한다. 이용 중인 다른 은행들의 계좌 현황도 볼 수 없다.

그런데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중간에 생길 경우 사용하는 모든 은행 계좌를 비롯해 카드, 보험, 통신 등의 정보를 한 곳의 인터넷뱅킹을 통해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이다. C 부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각 금융사의 독점권이 폐지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맞춤형 재무 컨설팅 등이다. 수입 대비 지출, 투자 수익률, 이자지출 비율 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소비패턴을 분석해 시중에 나와있는 신용카드 중 무엇이 가장 적당한지 알려주는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B 부사장은 “금융, 유통, 통신, ICT의 구분이 불분명해졌다는 걸 알고 있다. 3년 전부터 그런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준비해 왔다”며 “기존 금융사에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의 디지털 업무 담당자는 “기존 금융 상품은 나이와 성별 등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라며 “앞으로는 개인별 신용상태과 재무현황, 생활패턴 등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출 취급 등을 할 때 금융거래 외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포인트다. “미국 유학생 시절 신용카드 발급이 계속 안 됐다가 비(非)금융 정보인 아마존 거래 내역을 통해 카드 발급이 가능했다”(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심리 검사나 사회관계망서비스 활동 등을 활용한 대안 신용등급평가도 활성화할 것”이라며 “신용평가가 세밀해지는 만큼 연체 관리도 진화할 수 있다”고 했다.

◇‘데이터 3법’ 개정 필요한데…국회서 발목

문제는 국회가 이 같은 혁신을 막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 3법을 국회서 발목 잡고 있어서다.

개인정보를 빅데이터화(化) 할 때 중요한 게 보안이다. 특정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하는 작업인데, 널리 통용되는 방법이 가명 처리와 익명 처리다. 이 중 가명 정보는 익명 정보처럼 개인 식별성을 제거한 게 아니라 식별성을 낮춘 것이다. 나이, 성별, 거주지 등 신상 정보가 대부분 남아 있어 빅데이터로 가치가 크다. 그런데 지금은 가명 정보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현재 은행, 보험사, 카드사, 핀테크회사 등이 이종 데이터 융합을 하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데이터금융센터장은 “전세계적으로 빅데이터 시대임에도 국내에는 제약이 너무 많다”며 “신용정보법이라도 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사들이 수십 년간 쌓아올린 자사 데이터를 경쟁사나 신생 핀테크사에 쉽사리 내어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 금융사 임원은 “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한 이후 멤버십 포인트를 매개로 그룹사 간 데이터 공유가 일정 부분 이뤄지고 있다”며 “시스템 개발을 빌미로 데이터 제공을 차일피일 미뤄 법 개정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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