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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목멱칼럼]정부출연 연구기관 시장과 소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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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우리나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생산성(기술료 수입액/직접연구비 투입액)은 3.6% 정도로 해외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뻔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처럼 저조한 연구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훌륭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연구성과만 우수하면 연구생산성은 저절로 높아지진 않는다. 연구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장에서든 공공 목적이든 쓰임새가 높은 연구를 해야 한다. 지금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에서의 연구는 원천성도 없고 상용화도 안 되는 애매한 연구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 문제이다. 출연연 연구는 오히려 원천성이 아주 크거나 반대로 사업성이 매우 높은 영역이 주가 되는, 즉 양쪽 끝단의 비중이 높은 U자형 연구가 돼야 한다. 여기에서 상용연구는 기업이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기술의 성숙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원천연구는 세계 시장을 이끌어 갈 만큼 원천성이 높고 파괴적 혁신을 이끄는 연구를 의미한다.

최근 국내 대기업은 자체 연구역량도 커지고 글로벌 경쟁에 정신이 없어서 출연연의 그저 그런 연구결과는 쳐다볼 여유조차도 없다. 삼성전자는 2017년도에 연구비로 17조 3000억원을 사용해 R&D 투자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반면 과학기술연구회 소속 25개 출연연은 전체 R&D 예산이 삼성전자의 7분의 2 정도이다. 이를 가지고 천문부터 우주, 식품까지 전 분야를 연구해야 하는 실정이다. 기업이 필요한 것을 선제적으로 개발하기는커녕 자칫 잘못하다가는 대기업의 뒤만 쫓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대기업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지금 당장 쓰이지 않는 미래기술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출연연이 미래 시장과 기술의 전개 과정을 면밀히 분석·예측하고 그 길목에서 꼭 필요한 핵심 원천기술들을 선제적으로 개발한다면 그 쓰임새가 크게 높아지고 연구생산성도 자연히 향상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원들이 학회 참석하는 것 못지않게 기업인 및 투자자들과 자주 만나고 국제 박람회 등에도 참석해 시장 흐름을 통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는 연구원이 원천성 높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평가시스템도 논문이나 특허 수 같은 양적 지표는 과감히 없애고 장기적인 성과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 연구원들이 단기 프로젝트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고 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과제의 규모를 키우고 사업기간도 늘려줘야 한다.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연구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줘야 한다. 출연연도 이에 부응해 연구원 전체가 똘똘 뭉쳐서 협력하고 굵직한 성과물을 많이 내야 한다.

출연연에는 최첨단은 아니더라도 기업에 필요한 기술이 많이 있는데 이들을 사업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출연연은 이것이 자기의 일이 아니라 생각해 그냥 묵혀두는 경우가 많다. 옛말에 결자해지라고 했다. 이를 해결하는 일은 당연히 출연연의 책무다. 출연연은 자꾸 새로운 연구만 할 것이 아니라 보유한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 시장과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기술의 수요처를 찾는 문제도 중요한데 쉽지 않은 일이다. 출연연에서 일일이 기업을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기업의 정보가 많은 기관이 기술수요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출연연과 연결해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은 지난해부터 특구 입주 기업의 기술수요를 조사, 기술 공급기관과 연결해주는 컨설팅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사업화 가능성이 높게 분석된 경우 비즈니스모델을 수립해주고 출연연, 투자자 등이 참여하는 협상을 주선해 기술이전을 효율적으로 연결해준다. 올해에는 전체 특구 기업을 시스템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여 성과를 높여나갈 계획이다.

출연연 기술을 활용한 창업도 활성화해야 한다. 출연연들이 사업화 가능 기술을 산업별로 분류, 대학에서 실전창업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면 출연연의 연구생산성과 대학의 창업비율이 동시에 높아질 것이다. 연구생산성을 2~3% 포인트 올리는 일은 100m 달리기 기록을 2~3초씩 단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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