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모습처럼 척박한 아름다움 간직한 곳, 마치 달의 표면 같아
칠레의 북쪽, ‘달의 계곡’이라 불리는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마을이 있다./사진 변종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달의 출입문,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6400km가 넘는 긴 해안선을 가진 나라 칠레의 가장 북쪽. 그곳에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 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넘으면 처음으로 만나는 국경 마을. 산 페드로데 아따까마는 아따까마 사막 한 가운뎃점처럼 찍혀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잉카 시대 이전의 마을로, 원주민이 아직도 생활한다. 이 척박하고 건조한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순전히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때문이었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만난 많은 여행자가 달의 계곡을 이야기했다.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오는 마지막 밤에는 실제로 커다란 보름달이 떠서, 그 밤을 지내고 나면 정말로 달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아따까마 사막지대는 해발 2438m가 넘지만, 여전히 뜨거웠다. 덕분에 첫인사가 뜨거운 열기였다. 그리고 열기를 온전하게 시각적으로만 식혀주는 하얀색 집들이 있다. 어도비 양식의 흙집들은 척박함과 상관없이 동화적이다.
새하얀 산 페트로 교회는 1544년 지어졌다가 18세기 증축됐다. 소박한 외형이지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 1001’에 선정되었을 만큼 아름답다./사진 변종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행객을 맞이하는 여행사와 숙소, 식당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네는 한낮이면 인적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에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있다. 산 페드로 교회는 아르마스 광장 옆에서 가장 빛나는 건물이다. 1544년에 지어진 것으로 현재의 모습은 18세기에 다시 증축됐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 모양의 이 교회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 1001’에 선정되기도 했다. 커다란 후추나무 곁의 새하얀 교회.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위로 향한 십자가가 달의 관문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건물처럼 성스럽다. 나는 자꾸만 이 척박한 마을이 아름답기만 하다.
◇ 태초의 풍경을 담은 ‘사막의 사막’
해가 한풀 꺾인 오후. 드디어 달의 계곡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마을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이지만, 스치는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지구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새하얀 건물들이 사라지고 사막의 사막으로 들어간다. 부드러운 사막이 아니라 날카롭고 단단한 사막이다.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 태초의 풍경이 이럴까 생각한다.
차가 멈춘 곳에서 얼마 걷지 않았다. 하늘이 순해지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발아래 펼쳐진 거대한 달의 표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 누구도 달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분명 달의 표면이라 여길 것이다. 여기는 달의 계곡. 달의 표면에 닿았다.
바람과 비와 태양이 만들어 낸 흔적들, 달의 표면이 이러할까?/사진 변종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바람과 비와 태양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시간의 흔적들.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태고의 자연이 지구의 한 부분을 이토록 척박한 아름다움으로 유지시켰다. 거대한 협곡 사이로 펼쳐진 달의 표면에 많은 사람의 시선이 닿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달이 되었다.
◇ 난생처음 보는 풍경에 달이라 믿을 수밖에
전망대를 내려와 소금 동굴로 향했다. 바다였던 자리가 솟아나 대륙이 된 곳에는 시간이 흘러도 바다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다. 소금의 결정들이 바위 위로 하얗게 올라앉았고 물결무늬로 협곡을 이룬다. 눈 앞에 펼쳐진 소금 바위들이 곡선과 직선, 때로는 굴처럼 음산했다가 태양의 온도에 따라 경쾌하게 맑은 소리를 낸다.
해가 소금사막 쪽으로 넘어가는 시간. 기울어지는 태양을 보기 위해 아따까마 사막을 오른다. 그림자는 길어질 대로 길어져 희끗희끗하게 솟아난 소금 바위들이 달의 주민들처럼 서성거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죽어있는 달의 계곡에서 가장 강렬하게 살아있는 태양을 마주한다.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암석들은 초 단위로 색을 바꾼다. 무채색 바위가 분홍이 되었다가 오렌지빛으로 익었다가 붉게 타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태양이 사라지면 달의 계곡도 온통 암흑이다. 대신 머리 위엔 별들이 아주 가깝게 내려앉는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거대한 암석들은 초 단위로 색을 바꾸어 간다./사진 변종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PS. 달의 표면을 돌아보는 일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서 넘어오거나 반대로 칠레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도중에 거쳐야 할 마을이다. 그래서 이 작은 마을에서는 수많은 투어 상품을 판매한다. 투어의 종류에 따라 시간이 다르므로 일정에 맞게 계획한다면, 하루에 많은 지역을 볼 수 있다. 꼭 추천하고 싶은 투어 타띠오 간헐천(Geyser Del Ratio)은 해발 4500m에서 끓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간헐천인데, 여기서 수영을 하거나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체력이 된다면 새벽에 간헐천 투어를 끝내고 오후에 달의 계곡 투어를 해볼 것. 밤과 낮의 기온 차가 크기 때문에 투어 때는 꼭 가벼운 점퍼를 챙겨야 한다. 특화된 관광지로 비교적 물가가 비싸다. 숙소와 식당은 마을 규모에 비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
[변종모 여행작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