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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국가의 통신정보 통제권 강화” “공론화 미비 탓 과도한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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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I #도박·음란사이트 #접속차단…‘인터넷 검열’ 논란 확산

방통위, https 차단…성범죄와 전쟁 명분 ‘감시 정당화’ 우려

벌써 우회 접속, 실효성 의문…전문가 “근본적인 해법 필요”

정부가 최근 해외 도박·음란사이트 등에 대한 접속을 막겠다며 ‘SNI(Server Name Indication) 필드 차단’이라는 새 차단 방식을 도입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인터넷 통제 강화에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인원은 18일 24만명을 넘어섰다. 일각에서는 사이버 공간에 대한 정부의 ‘검열 강화 시도’라는 해석도 나왔다.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한 정부의 정책이 새로운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https 차단’으로 불리는 SNI 필드 차단은 웹사이트 접속 과정에서 주고받는 ‘서버 이름’이 암호화되지 않고 노출되는 점을 노려 이용자 접속을 막는 방식이다. 웹브라우저 주소창에 ‘http’ 대신 보안접속 방법인 ‘https’를 입력하면 차단된 인터넷주소(URL)라도 접속이 가능하고, 지난해 도입된 ‘DNS(Domain Name System) 차단’ 방식도 우회접속이 가능한 문제가 생기면서 보다 강화된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방식으로 지난 11일부터 해외 주요 음란사이트와 도박사이트 등 895개 사이트에 대해 국내 접속을 차단했다.

보안 허점을 이용해 사용자가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파악·차단한다는 점에서 ‘인터넷 사전 검열’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통위는 “SNI 필드 영역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통신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통신사업자가 스팸 차단과 같이 기계적으로 접속하는 것으로 통신 내용을 확인하는 감청과 무관하다”고 논란 진화에 나섰다.

다만 감청 논란과 별개로 정부의 인터넷 통제 강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보인권단체 ‘오픈넷’은 “접속차단이 곧바로 개별 이용자의 패킷이나 접속기록 내용을 직접 들여다보는 감청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제도로 이용자의 통신 정보에 대한 국가기관의 통제권이 강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도 논평을 통해 “통신비밀침해를 확대하기 시작하면 디지털 성범죄뿐 아니라 국가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인터넷 트래픽에 대한 감시가 정당화될 수 있다”며 “광범위한 차단 권한을 가진 국가가 그 대상을 정부 비판과 기업 비판까지 자의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단체는 2011년 방통위의 한총련 홈페이지 폐쇄, ‘@2MB18nomA’ 트위터 계정의 국내 접속 차단을 그 사례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감청·검열 논란이 ‘오해로 인한 과도한 걱정’이라면서도 정부가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도입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벌써부터 SNI 차단을 우회하는 방법이 나오는 등 실효성이 별로 없는 방식인데도, 정부가 과거 제한적 인터넷 실명제 논란 때처럼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이를 추진해 불필요한 논란만 낳았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서는 SNI 차단을 피하는 방법이 퍼지는 등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은 “정부가 마치 디지털 성범죄 근절의 알리바이처럼 이 방식을 주장하고 있지만, 일괄적인 접속 차단보다 불법사이트의 수익 구조 등을 타격해 영상 유통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 교수도 “비유하자면 우범지역 치안을 강화해야 하는데 일괄적으로 자정만 되면 통행금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국제공조나 자정문화 조성 등 근본적인 해법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정부 조치에 찬성했다. 이 단체의 서승희 활동가는 “지난해 DNS 차단 방식이 도입됐을 때 접속자가 줄어 폐쇄된 불법사이트들이 꽤 있었다”며 “완벽한 범죄 차단이라는 것은 없는데, 그 불완전함 때문에 할 수 있는 차단 조치를 문제 삼는 것은 피해자 구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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