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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정지훈 "민족 영웅 변신위해 하루 8시간 자전거 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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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해 배우 겸 가수 정지훈(37)은 4개월간 자전거만 탔다고 했다. 평평한 운동장 같은 데서 탔겠거니 싶었는데, 세상에나. "모랫바닥이었어요. 100여 년 전엔 지금처럼 반듯한 도로가 없었을 테니까요." 장소는 서울 올림픽공원 인근 사이클 훈련장. 새벽녘에 일어나 아침 8시까지 출근했다. 사이클 선수처럼 8시간 훈련하고 오후 6시면 탈진한 채 귀가했다. 정말이지 죽어라 페달만 밟았다.

"개미지옥이었어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앞만 보고 외롭게 자전거만 탔으니까. '닌자 어쌔신'(2009) 촬영이 힘든데 즐거웠다면 이건 그냥 힘만 들더라고요. 나중엔 코치께서 그러셨어요. '아마추어 대회 나가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요(웃음)."

27일 개봉하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그는 주인공 엄복동을 열연한다.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자전차(이하 자전거) 대회 선수로 뛰던 실존인물이다. 1913년 4월 13일 용산대회에서 우승한 이래 15년간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 전설적 존재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그의 대회를 보기 위해 경성 인구 30만명 중 10만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후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정지훈은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님 못지않게 널리 알려야 하는 분이라고 생각해 더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고 했다. 허벅지 근육이 한가득 부풀어 오른 건 그래서였다. "몸은 건강해지는데 바지가 점점 안 맞더라고요. 32~33사이즈면 됐는데 언제부턴가 38~40사이즈는 돼야 간신히 입겠더라니까요."

영화는 엄복동이 당대 민족 영웅으로 부상하기까지를 그린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가난한 서민의 자식이던 그가 거리에서 마주친 자전거에 매료된다. 때마침 일제는 전조선자전차대회를 개최하려던 터고, 엄복동은 이 대회에 참여해 연이어 우승한다. 애국단을 후원하는 자전차상회 사장인 황재호(이범수)는 그런 그를 적극 후원하기로 한다. 그는 "일본군 한 명을 죽이는 것보다 백성 한 사람 마음을 얻는 게 진정한 독립"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이 영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조선의 민족의식을 꺾으려는 의도로 개최된 대회가 엄복동에 의해 역작용을 일으키자 일제는 최후의 자전차 대회를 열어 그를 죽이려고 한다.

사실 미진한 구석이 적잖은 영화다. 컴퓨터그래픽(CG)은 조악하고 플롯은 헐거워 구멍이 많다. 엄복동 일대기에 집중하면 좋았을 메인 플롯이 독립운동 서브 플롯으로 인해 흐트러진다. 순박한 시골 청년 엄복동과 애국단 행동대원 김형신(강소라) 간 러브라인은 개연성이 부족해 극의 몰입을 저해한다. 그렇다고 영화적 가치까지 없진 않다. 묻혀 있던 값진 역사를 드러냈다는 점, 정지훈의 새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그의 시원시원한 자전거 활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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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은 "이렇게 가난하지만 순수한 스포츠인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드라마 데뷔작 '상두야 학교 가자'(2003)에서 순정남을 연기해보긴 했는데 이후 십수년간 재벌집 아들, 킬러, 아시아 스타 같은 배역만 연기했어요. 엄복동은 다르죠. 고무신 신고 물지게 지고 순박하게 웃거든요. 낯설었지만 이런 캐릭터를 해본 데 보람을 느껴요."

그도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고 있다. 1997년 나이 열여덟에 그룹 가수로 데뷔. 이듬해 해체돼 방황하던 차 프로듀서 박진영이 건넨 손길로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4년간 트레이닝해 '비'라는 댄스 가수로 인기를 끌었고, 20년째 가수 겸 배우로 뛰고 있다. 2017년엔 배우 김태희와 결혼해 예쁜 딸까지 낳은 한 여자 남편이자 아빠이기도 하다.

정지훈은 "안성기 선배처럼 천천히 오래 연기하는 배우이고 싶다"고 했다. "직업이 두 가지라는 점 때문에 영화를 다작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앞으로는 조연이든 주연이든 가리지 않고 폭넓게 해보고 싶어요. 기회만 주어지면 '아메리칸 싸이코'(2000)에서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사이코패스 같은 역도 자신 있어요."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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