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공장 노동자, 제조업자, 의사, 간호사, 마차꾼, 고물상, 면장, 면서기….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사람들의 수형기록카드를 들여다보니 학생과 농민 뿐만 아니라 이처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두루 3·1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서대문구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서대문형무소 3·1운동 수감자 자료집’을 오는 25일 발간한다. 1919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3000여명 가운데 수형기록카드가 남아있는 1014명의 기록을 1300여쪽 자료집에 담았다. 수형기록카드가 비어있는 경우 판결문 등 자료를 찾아 보완하는 작업을 거쳤다.
수감자 1014명의 기록을 분석해 보니 연령은 20대가 39.3%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22.7%), 40대(15.1%), 10대(12.8%), 50대(7.3%), 60대(2.8%) 순이었다. 수형기록카드에 직업이 기재된 777명 가운데 절반 이상(54.6%)은 농업 종사자였다. 학생, 교사, 종교인은 26.4% 였다. 기록된 직업을 분석해 보니 상인, 공장 노동자, 제조업자, 의사, 간호사, 마차꾼, 고물상, 면장, 면서기, 순사보 등 80여 종류의 직업이 확인됐다.
죄명은 대부분(92.6%) ‘보안법 위반’이었고, ‘소요’, ‘출판법 위반’, ‘정치에 관한 죄’ 등도 있었다. 형량은 가볍지 않았다. 형량이 파악되는 929명 가운데 4명이 12년 형을 받았고 10년 형이 2명, 7년 형이 9명, 6년 형이 3명, 5년 형이 9명이었다. 1년6개월 이상 4년형 미만 형을 받은 사람은 141명, 6개월 이상 1년6개월 미만 형을 받은 사람은 761명이었다. 6개월 미만은 7명 뿐이었다.
전국 각지로부터 수감된 사람들 중에는 북한 지역에서 3·1운동을 벌이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사람도 230명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 투옥된 사람 60여명의 수감 기록도 남아 있었다.
공훈 여부를 조사해 보니 1014명 가운데 3분의1은 포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사람은 672명(66.3%)이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이 자료집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이름이 불리고 공훈을 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대문구는 26일부터 자료집을 관련 연구기관과 전국 도서관에 배포한다. 또 자료집 발간일인 25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강의실에서 ‘서대문형무소 3·1운동 수감자 현황과 특징’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연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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