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일부 극단적 ‘무수면’ 특성…만성 수면 부족에도 건강·수명 단축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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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부터 포유류까지 잠은 모든 동물의 공통된 현상이다. 생명 유지에 핵심적인 기능을 맡기 때문에 오랜 진화과정에서 보존됐다고 할 수 있다. 만성적으로 잠을 못 자면 종종 죽음에 이른다. 그런데 ‘잠을 자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동물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제기한 실험결과가 나왔다.
틴 가이스만 등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생물학자들은 21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실린 논문에서 “일부 초파리가 사실상 잠이 없으며, 평생 잠을 자지 못하게 한 실험에서도 건강과 수명에 악영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초파리에게 잠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기능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까지 학계에 보고된 만성적인 잠 부족 실험은 개, 쥐, 바퀴, 초파리 비둘기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비둘기를 빼고는 모두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들 실험이 정확성은 물론 실험방법의 신뢰도가 낮고 비윤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이뤄진 개 실험은 강아지를 끝까지 자지 못하도록 괴롭히는 방식이어서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불확실했다. 졸면 물에 빠지도록 한 장치에서 시행한 쥐 실험도 하루 수백번 물에 빠진 쥐가 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에 죽었을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인도적인 이유로 이뤄진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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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초파리의 수면을 정확하기 측정하기 위해 인공지능의 한 분야인 기계학습(머신러닝)을 도입했다. 나흘 동안 야생형 노랑초파리 암컷 881마리, 수컷 485마리를 대상으로 튜브 속 움직임을 비디오로 촬영하면서, 정지했을 때도 그루밍, 먹이 먹기, 산란 등의 행동을 가려내 추적했다. 기존 실험에서는 일정 시간 정지한 초파리는 자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 결과 수컷 초파리는 하루 평균 10시간 18분을 잤지만, 암컷은 5시간밖에 자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컷은 산란과 먹이 먹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암컷 가운데 절반은 잠자는 시간이 하루의 20% 미만이었다. 암컷의 6%는 하루 평균 72분만 잤다. 극단적으로 하루 4분, 14분, 15분을 잔 암컷들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초파리가 평생(약 2달) 회전하는 튜브 속에서 계속 걷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수면의 95.6%를 막는 이 장치를 통과한 초파리에서 성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건강과 수명 단축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우리 데이터로 볼 때 ‘잠 안 자고 살아가는 동물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며 “야생형 초파리에게 잠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실험실이 아니라 포식자와 경쟁자가 있는 야생이라면 수면 부족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면은 “생리적으로 핵심적 필요는 아니지만, 진화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또 초파리가 아주 짧은 기간의 쪽잠으로 잠의 효과를 거둘 가능성도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Quentin Geissmann et al, Most sleep does not serve a vital function: Evidence from Drosophila melanogaster, Science Advances, 2019;5: http://advances.sciencemag.org/content/5/2/eaau925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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