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1 (화)

동전 택시기사와 故 강연희 소방경 사건, 피해자의 죽음만 남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맥락중심 비껴간 가해자들

'동전 조롱' 후 심근경색…인과관계 없나

지병 깨운 취객 폭행…안전했던 구급활동?

죽음의 무게는 계량 가능한가

전북CBS 김민성 기자

승객과 말다툼하다 '동전 조롱'을 당한 뒤 사망한 택시기사. 취객을 병원으로 이송하다 폭언과 폭행을 당한 후 지병이 악화해 숨진 故 강연희 소방경. 두 죽음을 초래한 '승객'과 '취객'은 각각 폭행 혐의를 받는 피의자와 소방기본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피고인 신분으로 맥락의 중심을 비껴갔다. 수사기관은 택시기사와 소방관의 사망 원인을 급성심근경색과 뇌동맥류 파열이라는 질병으로 봤을 뿐이었다.

노컷뉴스

'동전 택시 사건'으로 알려진 택시기사 폭행사건 당시 찍힌 CCTV.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죽은 사람만 있고 죽인 사람은 없는 '동전 택시' 폭행 사건

이른바 '동전 택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승객 A씨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당초 A(30)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한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이같이 결정했다. 말다툼과 동전을 던진 행위만으로 기사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담은 CCTV와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따르면 숨진 택시기사는 당시 마흔 살 터울의 A씨로부터 욕설과 함께 '택시기사니까 넌 택시만 하면 돼' 등 조롱을 받다 날아온 동전에 몸을 피했다. 이후 3분여 뒤 바닥에 쓰러진 기사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유가족은 경찰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숨진 택시기사의 며느리는 지난 15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동전택시기사사망사건. 철저한 수사와 엄정하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합니다. 저희 아버님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저희 아버님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많은 고민 끝에 글을 올린다'며 운을 뗀 며느리는 "정말 아버님의 죽음에 그 손님, 그 가해자의 행동이 단 1% 영향도 끼치지 않았을까요? 그냥 단순한 폭행이라면 왜 아버님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셨던 걸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명백히 폭행도 인정되고 그 결과 사망한 피해자도 있는데 왜 폭행치사가 아닌 단순 폭행인건가요"라고 재차 따져 물었다.

택시기사는 과거 운동관련 직업에 종사했고, 숨지기 전까지 운동으로 체력을 길렀다고 한다. 사고 한 달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기사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노컷뉴스

故 강연희 소방경 폭행 당시 찍힌 인근 CCTV. (사진=전북지방경찰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취객의 구급대원 폭행, 덜 위험하고, 덜 직접적이었나?

강 소방경은 지난해 4월 2일 B(48)씨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폭언과 함께 머리를 5-6회 맞았다. 이튿날부터 어지럼증, 딸꾹질 등 증상을 호소하던 강 소방경은 사건 발생 한 달 가까이 지난 지난해 5월 1일 끝내 숨졌다.

강 소방경 사건의 피의자인 취객 B씨는 폭행치사 혐의가 아닌 '소방기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당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익산소방서 소방특별사법경찰관은 "강 소방경이 숨지기 전 송치하는 바람에 소방기본법 위반으로 의율했다"고 설명했다. 전주지검 군산지청 관계자는 "익산경찰서에서 B씨의 폭행이 강 소방경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을 보내오면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강 소방경이 숨진 지 296일째를 맞는 현재까지 그의 죽음과 폭행 사이의 인과관계를 결론짓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강 소방경은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서 위험직무순직공무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인사혁신처 설명자료에 따르면 심의회는 부검 결과와 폭행 당시 영상,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대한의사협회 감정결과 등을 종합해 강 소방경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을 폭행으로 인한 외상이 아닌 폭행 이후 발생한 스트레스가 지병인 뇌동맥류를 악화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인사혁신처는 이 자료에서 위험직무순직공무원의 법적 정의(공무원 재해보상법 제3조 1항 4호.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입은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한 공무원')를 근거로 '(순직에 비해)요건이 보다 엄격하게 제한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흉기를 들고 소란을 피우던 자를 제지하던 중 흉기에 찔려 사망한 경우, 구조대원이 한강에서 구조활동 중 보트가 전복돼 익사한 경우' 등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된 사례로 들었다. 강 소방경의 죽음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폭행 사건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달 가까운 시긴차도 불리한 점으로 작용했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은 소방공무원의 공무 중 위험직무순직공무원의 요건에 해당하는 재해를 ▲재난·재해 현장에서의 화재진압, 인명구조·구급작업 또는 이를 위한 지원활동 또는 이를 위한 지원활동(그 업무수행을 위한 긴급한 출동·복귀 및 부수활동을 포함한다) ▲위험 제거를 위한 생활안전활동 등 크게 두 가지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정한 기준과 소방관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온도차가 감지된다. 앞서 지난해 11월 강 소방경의 동료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려 '구급차는 달리는 응급실입니다. 내부에는 각종 의료 기구 등이 있어 언제든지 위험한 흉기로 변할 수 있는 공간이며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구급대원들은 늘 긴장과 압박감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고 호소했다.

노컷뉴스

故 강연희 소방관 위험직무순직 불승인 설명자료. (사진=인사혁신처 설명자료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죽음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앞서 두 사례는 모두 '가해자의 행위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는 기관의 판단을 받았다. 판단은 판단으로 그치지 않았다. 승객 A씨와 취객 B씨는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은 폭행, 소방기본법 위반 혐의로 각각 의율됐다. 순직한 강 소방경 유족의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 청구는 불승인됐다.

최근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은 故 이정렬 소방장의 사례는 두 죽음을 보는 시선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소방장은 지난해 5월 10일 부산 영도구에서 동료들과 함께 서(팀) 단위 종합전술훈련을 받았다. 이후 집에 온 지 1시간여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흘간의 고강도 훈련을 마친 직후였다. 당시 그는 집에 와서 씻기 위해 물을 받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이 소방장의 사망 지점이 훈련 장소가 아닌 탓에 위험직무순직 인정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라 공무원이 실기·실습 훈련 중 입은 재해에 대해서만 위험직무순직을 인정하고 있어서다.

심의회는 고강도 훈련을 이 소방장의 직접 사인으로 봤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이 소방장의 경우도 그동안 인정해온 사례와는 다르지만 재해보상법 제정 취지 등을 고려해 넓게 해석하려고 노력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소방장은 강 소방경과 달리 지병도 없었고 사망 시각과 훈련 시각 또한 근접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소방장의 아내조차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남편 또한 한때 구급차를 타면서 '위험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구조·구급 상황에서 발생한 순직이 왜 위험 직무로 인정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소방장 사례는 동전 택시 사건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두 죽음의 직접사인은 모두 급성 심장사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인 경찰과, 의료인·법조인·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심의회의 판단은 달랐다.

각각의 죽음 계량법은 저마다 다른 뒷맛을 남겼다. 한 죽음은 사건 현장에서 숨졌지만 폭행을 직접사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반면, 어떤 죽음은 훈련장소를 벗어나고도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았다.

또 다른 죽음은 지병 유무와 사건 발생-사망 시간까지의 차이, 사망 당시 상황의 낮은 위험성 등를 이유로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저지른 죄의 무게마저 평가절하받았다는 우려의 시선도 아직 그대로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