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라인 거부에 조서검토 시간 확보 이어
방어권 보장 주장하며 보석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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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포토라인 거부, 충분한 조서검토 시간 확보 등 '피의자' 권리를 내세웠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기소된 다음엔 피고인으로서 방어권 보장을 주장하고 나섰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라지만 일반인은 행사하기 어려웠던 것들이다.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이후에야 이런 권리들이 부각됐다는 점에서 씁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 26일 만에 재판부에 제출한 보석허가 청구서 14쪽에는 불구속재판의 원칙과 보석제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설명과 주장이 담겼다. 청구서에서 그는 "불구속 수사ㆍ재판 원칙, 묵비권, 무죄추정 원칙은 범죄자를 봐주려 생긴 게 아니라 억울한 사람의 희생을 막고자 한 것"이라며 "현재 구속영장 제도는 일종의 징벌로 이용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기소 전 구속됐더라도 사형ㆍ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 등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고인의 보석청구가 인용돼야 한다는 해석도 더했다.
아울러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보석청구가 반드시 허가돼야 하는 이유로, 검찰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충분히 증거를 수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판결을 받아낸 오제이 심슨 사건에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증거 인멸을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그 구속이 유지된다면 구속되지 않을 피의자·피고인은 없을 것'이라고 한 미국 법원의 판단 사례도 제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주장 논리에 대해 한 변호사는 "보석을 청구할 때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한다거나 피해자와 합의한 점 또는 질병을 사유로 드는 경우가 많은데, 방어권 보장을 주장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피고인이 된 전직 대법원장의 주장이어서 씁쓸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 지위를 이용해 원칙과 법을 준수하라는 재판부에 대한 압박일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주요 인물들이 검찰에 소환될 때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던 '포토라인에 서기'를 처음으로 거부해 포토라인 존폐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범죄사실을 기정사실화 해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또 검찰 조사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조서를 검토하는 데 보내면서 수사 편의를 위해 외면 받았던 피의자 권리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도 제공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심문은 오는 26일 열린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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