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트·범퍼침대 등 미끼...태아보험 불법 모집 기승
당국은 인력부족 이유로 현장 점검 없이 신고 검사만
사은품에 혹해 가입했다간 불필요한 특약에 만기 늘어 소비자만 낭패 볼 수도
[아시아경제 박지환 기자] "오늘 마지막 상담 고객이시니 8만원대 태아보험 가입하면 사은품으로 '시크' 카시트 50만원대 챙겨드릴께요." "원하시는 사은품 말씀해보세요. 카시트, 유모차, 범퍼침대 등 사은품 조건 다 맞춰 드립니다. 10분만 상담 받고 가세요."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2전시장에서 열린 제30회 맘스앤 베이비 엑스포에서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 설계사들의 말이다. 이날 행사장에 마련된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동양생명 등 태아보험 관련 부스에는 가입 상담을 받고 있는 부부들로 북적였다.
주말에 주로 열리는 베이비페어 행사장에서 GA소속 보험 설계사들의 태아보험 불법 모집 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금융당국 감독에 한계가 있는 상황을 이용해 고가의 사은품을 미끼로 한 고객 유치 경쟁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보험가입 대가로 고가의 사은품을 주고 받는 행위는 명백히 불법이다. 현행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 판매자는 최초 1년간 납입보험료의 10% 또는 3만원 중 적은 금액을 초과하는 현금 및 상품 등을 지급할 수 없다. 이를 어기고 보험가입을 대가로 고가의 사은품을 주고 받는 행위를 하면 주는 사람 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 역시 처벌 받을 수 있다.
GA설계사들이 사은품으로 내걸고 있는 유모차, 카시트 등은 보통 시중에서 30만원 이상의 가격표가 붙어있다. 3만원 이상 사은품 증정을 금지한 보험업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GA측은 사은품을 도매상으로부터 대량 구매해 단가를 낮췄기 때문에 보험업법의 이익 제공 한도를 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30만원 짜리 카시트 원가가 3만원 이하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고가의 사은품을 앞세운 불법 영업이 태아보험 시장의 기본적인 영업수단이 되고 있는데도 금융당국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베이비페어에서 고가의 사은품을 미끼로 한 보험업법 위반 사례가 많은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주52시간제 영향으로 주말 영업현장에 단속 인력을 운영하기에는 사실상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 보험대리점이 3만2000개나 돼 일일히 모든 현장을 검사나갈 인력이 없다"며 "현장 감시보다는 GA쪽 준법감시인을 통해 불완전판매나 특별이익 제공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예비 엄마들 사이에서는 각 보험사의 태아보험 상품 보장 내용이 비슷하다 보니 사은품을 보지 않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년 전 첫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태아보험에 가입했던 주부 장모(35)씨는 "지인을 통해 태아보험에 들면서 3만원도 안하는 욕조 선물을 받았는데 주변에서 똑같은 상품을 가입하고 30만원이 넘는 사은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하는 태아보험을 사은품만 보고 가입할 경우 불필요한 특약에 보험료만 비싸져 사은품을 본인 돈으로 구입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인기가 많은 사은품을 받기 위해서는 보험료가 8만원 이상이 돼야 하는데 이 가격을 맞추려면 핵심보장만 설계할 수 없어 보험 만기는 늘고, 불필요한 특약도 많아진다"며 "보험료가 높아지는 만큼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들에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박지환 기자 pj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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