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육체노동 가동연한 65세”
30년 만에 ‘5년 상향’ 판례 변경
손해배상·보험금 산정 등 파장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모씨 등이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본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박씨는 2015년 당시 4세였던 자녀가 수영장 사다리에서 수심이 깊은 곳으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나자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원심은 업체가 위험한 곳에는 아동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안전을 위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손해배상액이었다. 손해배상액에는 피해 자녀가 사고 없이 계속 일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입(일실수입)이 포함되는데 그 기준이 되는 육체노동 가동연한에 대한 대법원의 기존 입장은 ‘만 60세’였다. 1989년 12월26일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변경한 뒤 유지해온 판례다. 박씨 측은 의료복지 향상 등으로 소위 ‘100세 시대’가 된 상황에서 가동연한을 만 60세까지만 인정하면 실제 입은 손해를 보상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원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심은 피해 자녀가 성인이 된 후 21개월의 군 복무를 마친 때부터 만 60세가 되는 때까지의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한 액수만 업체가 물어내면 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지난해 11월29일 공개변론을 한 끝에 이날 ‘만 65세’로 가동연한을 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향상·발전하고 법 제도가 정비·개선됨에 따라 1989년 판결 당시 경험칙의 기초가 됐던 제반 사정들이 현저히 변했다”고 했다.
한국인의 평균 생존 나이가 1989년 남자 67.0세, 여자 75.3세에서 2017년 각각 79.7세, 85.7세로 늘었고, 법정 정년도 만 60세 이상으로 연장됐다. 실질 은퇴연령은 2011~2016년 남성은 72.0세, 여성은 72.2세로 조사됐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년 전 6516달러에서 지난해 3만달러로 증가하는 등 경제규모가 4배 이상 커졌고, 각종 사회보장 법령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고령자 또는 노인을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는 점도 대법원은 판례 변경의 근거로 제시했다. 기초연금 수급연령을 65세로 정한 기초연금법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은 “육체노동의 경험칙상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봐온 견해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고,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도 가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하다”고 밝혔다.
대법관들은 보충의견과 별개의견을 통해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를 가동연한 상향의 근거로 언급했다. 박상옥·김선수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저출산·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로 자녀에 기댄 노후를 기대하기 더욱 어렵게 됐다”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생활 및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갈수록 확대되고 경제활동 기간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가동연한을 일률적으로 만 65세 등 특정 연령으로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만 60세 이상’이라고 포괄적으로 봐야 한다고 별개의견을 낸 김재형 대법관은 “법정 정년을 기준으로 가동연한을 정하는 것은 고령화가 심화되고 사회 상황이 급변하는 우리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63세로” 별개의견도…대법 “하급심별 논란 종식”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가동연한을 만 65세가 아니라 만 63세로 보는 게 맞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65세 이상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지난 1989년에 비해 늘어나기는 했지만 60~64세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며 “그 연령대 이후 사망 확률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일반적인 법정 정년 및 연금수급 개시연령이 2018년 현재 63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통상의 경우 만 63세까지 경제활동을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손해보험협회 측은 공개변론 때 육체노동 가동연한이 상향 조정되면 한국 사회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작용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육체노동 가동연한에 관해 하급심별로 엇갈리는 판단으로 혼선을 빚고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새로운 경험칙에 따라 만 65세로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논란을 종식시켰다”고 설명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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