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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국책기관 ‘수사권 조정’ 설문조사, 검찰에 불리한 설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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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정책연, 검ㆍ경 수평적 모델로 전환 골자 정부 기조에 짜맞춘 듯 사전 설명

수사권 조정에 불만 있는 검찰도 “설명 보니 나라도 찬성 찍겠다”
한국일보

형사정책분야 유일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이 검찰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문항으로 수사권 조정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 권한을 현재보다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현 정부의 기조에 짜맞춘 조사로 ‘학문적 균형을 잃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21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형정원은 지난해 8월과 9월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수사권 조정 관련 현안에 대한 찬반 설문을 진행하면서 수사권 조정을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사전 설명을 덧붙였다. 문제는 설명문에 수사권 조정 정부안의 국정홍보 자료와 매우 비슷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나 형사법 학계에서 수사권 조정 때 발생할 수 있다며 제기한 문제들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정부안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모든 사건에 대한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한다는 게 골자다.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기 전까지는 검찰이 수사를 지휘할 수 없도록 못박아 검경의 수직적 지휘체계를 수평적 모델로 바꾸자는 게 정부안의 의도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검찰과 형사법 학계에서 강력 이의를 제기하면서 수사권 조정의 최대 쟁점이 돼 있다.

형정원은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을 하면서 “권한 분산으로 어느 한 수사기관에 권한이 집중돼 나타날 수 있는 권한의 남용행태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수사권 조정의 의의를 적었다. 수사권을 조정하면 검찰 집중에 따른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맥락이 담겨서 이 방향으로 응답을 유도하는 설문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최대 쟁점인 수사종결권에 대해선 “경찰 조사 결과 혐의가 없다면 바로 석방된다”며 장점을 언급했다. 경찰에 수사권이 넘어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비대화 문제나, 경찰로의 정보 집중 현상의 부작용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검찰 기능 일부를 대체할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도입 역시 “권력형 부패범죄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며 긍정적인 설명을 달았다.

이런 사전 설명을 동반한 설문 결과는 당연히 정부안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왔다. 공수처 신설에 응답자 83.0%가 찬성했다. 수사권 조정 찬성은 83.5%가 나왔는데, 설명문을 제시하지 않고 조사했을 때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수사권 조정에 내심 불만이 많은 검찰 내부에서는 형정원 설문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한 검찰 관계자는 “설명문을 읽어보니 검사인 나도 찬성을 찍고 싶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 편향’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형정원은 공공기관운영법상 ‘기타공공기관’으로, 국무총리 산하 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에서 원장을 선임한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은 더욱 학문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목적에 대한 의심이 드는 설문과 보고서”라고 평했다. 다만 수사권조정 정부안이 이미 나온 만큼 통상적인 정책평가 설문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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