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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일자리 잃고 가게 문닫고…소득주도성장, 저소득층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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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격차 사상 최악 ◆

매일경제

긴급 관계장관회의 "저소득층 지원 늘릴것"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소득분배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홍 부총리,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 강신욱 통계청장. [사진 제공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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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분기부터 4분기까지 1년 내내 하위 20% 저소득층(1분위) 소득은 줄고 상위 20% 고소득층(5분위) 소득은 늘어나는 등 극심한 소득 양극화 현상이 진행됐음이 21일 통계청이 내놓은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로 확인됐다.

지니계수와 더불어 소득분배 불평등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균등화 소득 5분위 배율'(4분기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5분위 평균 소득을 1분위 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 역시 2017년 4.61배에서 지난해 5.47배로 악화됐다. 가난한 사람에게 세금을 덜 걷고 기초연금 같은 소득보전 조치를 해주는 효과를 뜻하는 '공적이전지출'을 감안한 결과다. 정부의 인위적인 소득분배 효과를 뺀 5분위 배율(시장소득 기준)은 같은 기간 6.54배에서 9.32배로 급등했다. 넉넉한 집의 벌이가 못사는 집의 10배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문재인정부의 실질적인 첫 소득분배 성적표다.

소득분배 악화의 핵심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을 지난해 역대 최대 폭(16.4%)으로 올린 것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해 자동차와 조선업 구조조정과 자영업 부진에 따른 중산층의 빈곤층 추락으로 진단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노동시장 규제로 가장 타격을 받는 계층은 기술이 없는 저숙련 노동자와 여성, 청소년, 노인 등"이라며 "이들이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면서 취업 대열에서 탈락하고, 소득이 없어진 것이 이런 소득 양극화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득 2~5분위 계층이 지난해 근로소득이 늘어난 것과 달리 1분위에서 근로소득이 전년비 36.8% 감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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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임시직과 일용직, 직원을 따로 두지 않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가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면서 무직(無職) 가구가 크게 늘어난 점을 소득분배 지표 악화의 최대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1분위에 속하는 무직 가구가 2017년 43.6%에서 지난해 55.7%로 절반을 넘어섰다. 또한 무직 가구 비중이 15.5%에서 19.3%로 증가했다. 자동차와 조선 등 제조업 구조조정으로 2~5분위에 있던 중산층들이 저소득층으로 내려앉으면서 소득이 작거나 없는 빈곤층이 늘어난 점도 소득분배 악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을 쓰는 자영업자들의 벌이가 줄어들거나 폐업이 늘어난 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사업소득 감소세가 1분위(-20.2%)와 2분위(-18.4%)에서 두드러진 배경이다.

저소득층의 기본소득 보장이라는 정부 최저임금 인상 취지와 달리 임금 인상 효과는 4·5분위에서 두드러졌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5분위라고 해서 전문직 등 엄청난 고소득층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해 4분기 5분위 평균 가처분소득은 부부 합산 450만원 정도"라며 "지난해 전체 계층의 처분가능소득이 4.8% 증가한 것은 4분위(6.1%)와 5분위(9.1%)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임시·일용근로자의 상용근로자화 같은 근로조건 개선 조치로 일이 있는 사람들의 소득은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대대적인 무직자 양산이라는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소득분배 악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2017년 4분기 근로소득이 전년 동기비 20.7% 증가한 기저효과와 함께 고령화에 따른 저소득·무소득 고령 가구 비중 확대를 꼽았다. 실제로 2016년과 2017년 각각 37.0%에 불과했던 1분위 70세 이상 가구주 비중이 지난해 42.0%로 5.0%포인트 늘어났다.

충격적인 소득 양극화 통계 발표에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등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회의 직후 정부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 정책의 집행에 더욱 매진하기로 했다"며 기초연금 인상과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 실업급여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내년에 한국형 실업급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회안전망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처방을 빼먹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순환적 측면에서 2017년 여름을 전후해 정점을 찍고 수축기로 접어든 경기 추세가 올 들어 반등기로 접어들기는 어렵다는 전문가들 평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사이클 자체를 상승세로 되돌릴 경기 활성화 방안을 강구하지 않은 채 인위적인 빈곤층 소득보전책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우석진 교수는 "경기 수축기에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나 생산성 떨어지는 근로계층이 정리되는 선순환적 구조조정이 일어나 바닥을 치고 성장세를 회복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부 정책들은 이 같은 '정리'를 지연시키는 측면이 강하다"고 경고했다.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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