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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포항의 3.1운동이 잘 알려지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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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특집기획, 포항의 3.1운동 1편

김선영 PD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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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포항CBS <유상원의 톡톡동해안> FM 91.5 (17:05~17:30)
■ 진행 : 유상원 아나운서
■ 제작 : 김선영 PD
■ 대담 : 이상준 향토사학자

‘올해는 3.1운동이 발발한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당시 포항지역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독립을 위해 일어났고 적지 않은 희생도 있었지만 포항 3.1운동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는데요. 유상원의 톡톡동해안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늘부터 다음주 3.1절까지 주 3회씩 6회에 걸쳐 포항의 3.1운동을 되짚어보고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이상준 향토사학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

◆ 이상준> 네 반갑습니다.

◇ 유상원> 1919년 3.1일에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이 올해로 꼭 100주년이 됩니다. 3.1운동의 의미,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 이상준> 예, 3.1운동은 독립운동의 분수령입니다. 우리민족에게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고 민족의 슬기와 독립의 의지를 전 세계에 천명했죠. 그래서 3.1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고 이는 우리 한민족 스스로가 민주공화제의 정부를 세웠다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우리나라를 통치지배하는 형태에 있어서 헌병 경찰들이 지배하는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바꾸는 그런 계기가 됐어요. 그게 3.1운동의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유상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경상북도나 포항시 차원에서도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고 하죠?

◆ 이상준> 맞습니다. 올해는 3·1 만세운동이 발발한지 꼭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서 경상북도에서 도차원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경북인의 역할을 재조명하는데 적극 나선다고 하고, 포항시에서도 100주년이자 시승격 70주년 기념행사를 내실 있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계에서도 학술세미나 개최나 유적지탐방 등 이런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국권회복을 위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계승·발전시켜서 시민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하는 의도는 칭찬할만한 일이라고 생각되죠.

◇ 유상원> 자, 이제 이 시간을 통해 포항의 3.1운동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분들이 독립운동을 했는지 살펴볼텐데요. 당시 포항의 3.1운동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 이상준> 그 당시 포항권 하면 영일군입니다. 영일군이 영일 청하 장기 흥해 이걸 포항권이라고 하는데, 포항권의 3·1 만세운동은 경북에서는 가장 빠른 시기인 1919년 3월 11일 포항장날을 기해 일어났습니다.

이 시위는 3월 12일까지 계속되다가 계속 퍼져나갔죠. 그래서 3월 22일 청하장터, 3월 27일 송라 대전리 두곡숲, 4월 1일 연일·동해·장기·오천·대송·연일·달전까지 퍼져나갔고, 4월 2일 기계·죽장·신광·청하·송라·흥해 이쪽으로 다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1920년대 발간된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보면 포항권의 3·1운동은 시위 횟수가 9회이고, 참가 연인원은 2천900명이며, 사망자가 40명, 부상자가 380명, 피검자 수사기관에 검거된 사람들이 320명으로 집계되어 있습니다.

◇ 유상원> 시기적으로도 경북에서 가장 빨랐고, 꽤 규모가 컸고, 사상자도 많았는데 포항의 3.1운동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못한 이유,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 이상준> 이는 전국적으로 봐도 결코 작은 규모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포항의 3·1운동이 이제까지 빛을 보지 못했죠. 심지어 포항에도 3.1운동이 있었냐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죠. 그것은 포항 3·1운동의 실체를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 포항에는 3.1운동 기념탑 하나 없잖아요. 이렇게 규모도 크고 포항에서 가장 빨리 일어난 지역인데 유적지가 포항교회, 여기가 옛날 제일교회그 중앙동 일대에 그 구교회가 그대로 있는데도 여기에 대한 역사적 장소에 대한 중요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3·1운동이 전국 곳곳서 해당지역의 환경과 참여자의 특성에 따라 양상을 달리하면서 발생했어요. 어떤 데는 농민위주, 어떤 데는 기독교 단체 위주, 어떤 데는 낮에, 어떤 데는 밤에 기습적으로 한 데도 있고, 이렇게 양상을 달리했는데, 그래서 지역의 특성과 연계한 사례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념사업도 이에 맞춰서 특성화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도 포항의 3.1운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해서 시민들을 상대로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고 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성해야겠죠..

◇ 유상원> 그렇습니다. 포항의 3.1운동을 재조명하고 시민들에게 잘 알릴 수 있는 노력이 지금부터라도 꼭 필요해 보이네요.

◆ 이상준> 맞습니다. 아주 중요한 지적인데요. 매월 1일과 6일날 포항에 장이 섰습니다. 그 장은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포항장터는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3.1운동이 일어났던 중앙동 일대에 가면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우리 포항의 3.1운동이 일본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던 한 복판에서 일어났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흔적들 이런 것들도 찾아볼 수 있고 또 포항제일교회 건물도 아직 있습니다. 여기서 3.1운동 발상이 된 곳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장소인데, 이런 것들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해서 이들 유적과 연계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참 좋겠죠. 그리고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던 중앙동 한복판에서 경북 최초로 3.1운동을 일으킨 지역성을 살린 역사적 의미를 한번 찾아보고 그런 역사적 공간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역사체험 콘텐츠를 개발해 본다면 호국문화도시의 이미지를 한층 제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화합과 발전에도 이바지 할 것으로 그렇게 생각됩니다.

◇ 유상원> 네 저희가 마련한 이 시간을 통해서도 포항 3.1 운동이 재조명되고 잘 계승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겠구요.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포항의 3.1운동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수요일에 2편이 이어집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상준 향토사학자였습니다.

◆ 이상준>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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