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2 (화)

[특파원 칼럼] 3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나다 / 김외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구글과 페이스북이 알고 있는 ‘나’가 있다. 3년 전까지 내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됐던 그 ‘나’다. 구글·페이스북이 차단된 중국에 오면서 그 ‘나’의 기록 작업이 멎었다. 3년 임기를 마치고 귀국을 앞둔 지금, 그 ‘나’가 기지개를 켜며 묻는다. 대체 그동안 어디서 뭘 했느냐고.

“중국에 있었어. 다채로운 3년이었어.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

―이를테면 어떤?

“지금도 진행되는 미-중 무역전쟁 같은 거랄까? 미국에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고, 그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여기서 봤잖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덕에 중국이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선언했어, 놀랍게도! 공산당 집권의 중국이 말이야.”

―한반도 정세 변화도 중국에서 봤겠군.

“맞아. 내가 부임한 뒤 북한은 3차례의 핵실험과 20여차례 로켓·미사일 실험으로 유엔 안보리 제재가 계속 고조됐지. 중국은 제재하면서 북핵을 비판했고, 북한은 중국의 제재 참여에 불만이 컸어. 북-중 관영매체가 서로 대놓고 비방전을 할 정도였지. 그런데 지난해 들어 남북, 북-미와 함께 북-중 관계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었잖아. 김정은 위원장이 4차례나 다녀갈 거라곤 솔직히 상상도 못했어. 북한 사람들의 계산엔 있었는진 몰라도.”

―한-중 관계는 어땠어? 참, 사드 보복 때인가?

“지긋지긋하다. 기억에 새겨진 장면들이 있어. 찢어진 태극기, 사라진 한국 영화, 문 닫은 한국 가게·식당, 롯데마트 앞 시위, 걸핏하면 한국을 욕하던 사람들, 한국인이냐며 내리라던 택시기사, 유치원에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빨간 펼침막 들고 ‘사드 반대’를 외치던 모습…, 무서웠어. 지금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풀린 건 거의 없어. 그러다 문득 보니 한-중 관계는 엉망이 됐고.”

―중국이 미세먼지나 불어대는 판에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좋아할 리가 있나.

“여하튼 기자들도 반성해야지. 무시로 ‘사드 영향’이란 딱지를 붙이며 반중 여론을 부추긴 언론도 한-중 관계 악화의 주된 원인이니까. 요즘 들어 나는 뭘 했나 하고 계속 스스로 묻게 돼.”

―중국에서 기자 생활은 어땠어? 언론 통제 국가잖아.

“통제는 강화됐어. 내가 있는 동안 시진핑은 한층 권력이 강화된 집권 2기를 시작했고, 해석은 분분하지만, 꽤 무시무시한 시절이 됐다고들 하지. 나도 조금은 겪어봤어. 취재 도중 수상한 사람이 따라붙고 출장 갔다가 뜻하지 않은 공안의 ‘환영 전화’를 받는 등등. 중국이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닌 자국 사정에 맞는 체제를 추구하는 건 이해하는데 객관적으로 봐서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인정을 받기엔 아직 이른 것 같아.”

―한국도 많은 일이 있었어.

“촛불과 탄핵. 여기 올 때만 해도 박근혜 정권이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는데, 참. 아직 여야 구분은 입에 잘 안 붙네. 그밖에도 여러모로 처음엔 적응이 안 될 것 같아. 그나저나 지난 3년을 왜 궁금해하지?”

―빈 기록을 채우려고.

“웨이신(위챗), 알리바바, 샤오미, 바이두 등등에는 기록이 다 돼 있을 거야. 아마 훨씬 자세할걸. 물론 웨이신·알리바바가 아는 지난 3년의 ‘나’와, 구글·페이스북이 아는 그전의 ‘나’는 차이가 있겠지. 만약 3년 전의 ‘나’가 중국에서 뭘 겪을지 알았더라면 한국을 떠나는 마음이 한층 무거웠을 거야.”

―중국을 떠나면서 아쉬운 건 없어?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앞으로 문득문득 느껴지지 않을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임기 마친 건 다행스럽고.”

―수고했어. 와서 적응 잘하자.

“응, 고마워. 그런데 구글이랑 페이스북 비밀번호 뭐였더라?”

oscar@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