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첫해 신임 청와대 참모들과 점심을 함께 한 뒤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국 민정수석비서관, 권혁기 춘추관장, 문 대통령, 이정도 총무비서관, 조현옥 인사수석비서관, 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일정총괄팀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임종석 비서실장.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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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조반정이 성공하고 반정에 기여한 공신들만 줄줄이 등용되자 백성들이 ‘왕위를 얻기 위해 형과 동생까지 살해한 광해군 정권하고 다를 게 뭐냐’고 푸념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 아닐까요.”
21일 만난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의 고언이다. 조선시대 연구가인 그는 올해 초 조선시대 참모들의 활약상을 조명한 ‘참모로 산다는 것’을 냈다.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얼마 전 책을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직원들에게 선물해 화제가 됐다.
신 교수는 잇단 인사 잡음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에 대해 “내 사람만 쓰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다양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탁하는 탕평 인사와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신 교수는 이른바 정권 개국공신을 챙겨 주는 인사 스타일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개국공신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정권을 잡을 때까지”라며 “정권을 잡고 나면 전문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태종은 즉위한 뒤 새 인물을 등용하기 위해 선대의 개국공신들을 모두 다 숙청했다”고 덧붙였다.
최고권력자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참모.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2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지도자가 알아 봐 주지 않으면 초야에 묻힐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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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교수는 문 대통령이 참고할 조선시대 인사로 이원익이 잇따라 중용된 사례를 추천했다. 이원익은 선조, 광해군, 인조까지 3대에 걸쳐 6차례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정파적으로 따지면 남인이었지만, 광해군의 북인정권, 인조의 서인정권에서 기용됐다. 정권을 갈아 엎을 정도로 당쟁 갈등이 첨예했던 시기에도 광해군과 인조는 이원익의 능력만 보고 인사를 밀어붙였다. 인조 초기 정권을 창출한 서인들이 ‘광해군 흔적 지우기’를 주장했지만, 인조는 이원익을 끝까지 곁에 뒀다.
신 교수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인조가 이원익을 고집한 이유는 백성을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원익은 민심이 사랑하는 참모였다. 그가 영의정으로 발탁 되자 ‘도성 백성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맞이 하였다’는 기록이 인조실록에 나올 정도다. 신 교수는 “인조는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집단의 말을 듣는 대신 백성의 눈높이를 존중했다”며 “그런 왕의 결단이 명 참모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참모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왕으로 세종대왕을 꼽았다. 세종은 자신의 즉위를 끝까지 반대한 황희를 처음부터 중용하고, 천민 출신인 장영실도 능력만 보고 발탁했다. 신 교수는 “세종은 포용과 실용의 리더십으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했다”며 “문 대통령도 시야를 좀 더 넓히면 좋은 참모들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촛불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국익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적극 등용해야 한다”고 말해 청와대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인물인가’를 지나치게 따지는 관행도 수정할 것을 주문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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