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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어떤 과거를 상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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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유작, 베냐민 강의록 출간

과거에서 찾는 메시아적 힘 강조

“난해한 에세이 해석에 좋은 길잡이”

베냐민과 아도르노 대조엔 이견



한겨레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김진영의 벤야민 강의실
김진영 지음/포스트카드·2만원


그의 유고작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에서 베냐민은 전승을 둘러싼 투쟁의 성좌(星座)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규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떠한 전승을 이어받을 것인가, 어떠한 과거를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현재의 지평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축을 형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니며, 언제나 자신이 지닌 미완의 과제를 현재 속에 제시한다.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5·18 항쟁을 폄훼하고 그 유가족들을 ‘괴물’로 지칭한 어떤 정치인들 역시 특정한 방식으로 과거의 이미지를 소환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과거에 ‘감정이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간첩들의 손에 넘어갈 뻔했던 국가를 구출해낸 ‘주권자’의 결단을 예찬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오늘날 ‘현재와 더불어 사라지려 하는 과거의 복원할 수 없는 이미지’를 아예 지워버리고자 한다. 이에 반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전통에서 역사를 고찰하는 사람들은 과거 세대와 오늘날의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약속’에 주목한다. 오늘날 그것은 과거에 쓰러져간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애도하는 회상(Eingedenken)의 정치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베냐민 강의록에서 고 김진영 선생은 폐허가 된 과거의 이미지로부터 희미한 메시아적 힘을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베냐민이 바라보는 당대의 상황은 “적법한 상속자들이 상속권을 박탈당했는데, 적법치 못한 이들이 스스로를 적법자라고 주장하며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벤야민은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를 전통과 상속의 문제로 읽어 내려” 시도했던 것이다. 즉 어떠한 과거의 전승을 상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신의 시대를 고찰하는 역사가와 알레고리커(Allegoriker)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이 책은 지난해 8월 작고한 저자가 2012년 인문학박물관에서 진행한 “벤야민과 근대성의 좌표”라는 제목의 연속 강좌 녹취록을 정리해 발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단지 베냐민을 소개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은 그 소개과정에서 드러나는 저자 자신의 에세이집으로 이해되고 또 그렇게 읽혀야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베냐민 사상에 대한 소개서이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저자 자신의 에세이집이기도 한 것이다. 고인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문학적인 언어감수성과 구사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저자의 언어를 활자화된 텍스트로 접할 때, 이는 독자를 전율케 하는 또 다른 힘으로 나타난다. 베냐민적인 언어, 개념, 표현들은 저자에 의해 새로이 해석된 에세이적 언어로 재창조된다.

한겨레

내용 면에서도 독자를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들이 돋보인다. 베냐민의 생애를 다룬 첫 장은 영화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가듯 베냐민의 짧고 강렬한 삶을 소개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어떠한 베냐민 입문서들보다도 상세하게 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2장은 ‘베냐민의 초상’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베냐민의 시기별 초상 사진들을 통해 그의 삶을 재조명한다. 이외에도 8강에서 전개되는 베냐민의 사진, 영화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탁월한 전달력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롤랑 바르트, 리오타르 등 현대 매체이론가들에 조예가 깊었으며, 프루스트, 스탕달 등 문학사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력을 가진 연구자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밖에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 등 베냐민의 난해한 에세이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베냐민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언어의 화려함보다는 개념의 해석과 사용의 엄밀성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는 철학적 배경에서 베냐민과 아도르노를 공부했다. 그래서 이렇게 에세이적 언어와 감성, 문학적 감각 속에서 철학 개념들을 해석하는 서술방식은 나에겐 낯선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와 김진영 선생이 베냐민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식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베냐민은 ‘결단’을 강조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아도르노는 ‘망설임’의 자세를 취한다는 설명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도르노가 일관적으로 강조하는 ‘비판적 거리두기’란, 우리의 행동 속에서도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한 ‘반성적 정지’라는 관점에서 베냐민적인 ‘정지상태’의 모티브를 이어받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되돌아보기 위한 정지’는 본래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와 브뤼메르 18일>에서 두더지의 이미지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을 ‘망설임’이라는 표현으로 담아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저자가 베냐민의 ‘신적 폭력’ 개념을 과도하게 아감벤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도 필자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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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인과 필자 사이의 이 ‘다름’은 결코 ‘옳고 그름’을 나타내지 않는다. 고인이 이 책의 활자 속에 우리에게 들려주는 숨막히는 문장과 표현들은 우리의 성찰을 자극하며, 그 자체로 우리에게 남겨진 값진 유산이다.

한상원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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