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심선애 할머니가 21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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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따르면 심 할머니는 전날 오후 6시20분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광주 기독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23일이다.
심 할머니는 파킨스병으로 광주의 한 요양병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고 병세가 최근 악화됐다.
심 할머니는 1930년 광주 북구에서 3남6녀 중 둘째로 태어나 1944년 광주 수창초등학교(당시 북정공립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그 해 5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본행 배에 몸을 실었다.
심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서 비행기 부속을 매끈하게 다듬는 일을 맡았다. 심 할머니의 나고야 생활은 기대와 달리 고통의 연속이었다. 비행기 부속을 다듬는 일에 배속돼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할당량을 맞춰야 했다. 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허기진 생활의 연속이었다.
심 할머니는 “일도 서툰 데다 할당된 작업량을 맞추기도 바쁜데 감시까지 심해 어린 우리들이 감당하기에는 무척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심 할머니는 1945년 도야마 미쓰비시 공장으로 옮겨졌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익지도 않은 ‘땡감’을 주워 먹거나 들판에 나가 꽃을 뜯어먹는 등 갖은 고생을 하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일본 생활로 인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만했다. 가까스로 강제징용 고통을 마찬가지로 겪은 남편을 만나 2남4녀를 두었지만 남편이 1987년 세상을 먼저 떠나면서 혼자서 아이들까지 키웠다.
20여년 간 파킨슨병으로 투병 생활을 한 심 할머니는 2014년 다른 피해자 3명과 함께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국내 2차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했다.
시민모임이 파악하고 있는 근로정신대 피해 생존자는 지난해 2월 말 기준 5245명으로 광주 121명, 전남 544명이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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