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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터치! 코리아] "싫다, 386이 만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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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되면 '남의 탓'… 청년에겐 꼰대질

풍요 물려받은 그대들… 우리에겐 무엇을 넘겨주었나

조선일보

김신영 경제부 차장


한국 사회에 전에 없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 정권과 청년의 충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청년 지지율이 1년째 곤두박질이다. 충격적 '성적표'를 받아든 정권 내부자들이 20대를 향해 날 선 훈계를 날린다. 여성가족부의 '아이돌 외모' 논란이 원인이란 분석도 나온다. 잘못 배운 배부른 세대의 일시적 이탈쯤으로 여기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잠깐, 1년 전 같은 '못 배운' 청년층의 80% 이상이 이 정권을 지지했던 건 잊었나.

진보 정권을 젊은이가 유독 싫어한다니 기현상이다. 문 정부의 뿌리가 이전 정권보단 청년과 접점이 많은 이른바 '386 세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386 세대는 이들이 주류로 부각된 1990년대를 기준으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인 이들을 일컫는다. 20년 전 조선일보의 38회짜리 기획 '한국의 주력 386 세대'의 첫 회를 보면 이들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대학을 보낸 동시에 6·29, 올림픽 등을 거치며 민주화·초고속 성장의 성취감도 맛본 세대다. 80년대 후반 물질적 풍요는 세계를 향한 발걸음의 동력이 됐다.' 대학 시절엔 힘겨웠지만, 졸업 후부턴 단군 이래 최고 성장기에 돌입한 한국 경제의 '꿀맛'을 누리며 살았다는 뜻이다. 시리즈는 '386이 건설할 한국의 미래에 기대를 걸어 보자'라고 마무리된다.

그로부터 20년, 이들이 만든 세상을 새 밀레니엄의 주인공들은 싸늘하게 평가한다. 연초부터 20대 청년들을 세계로 보내는 프로젝트 '청년 미래 탐험대 100'을 담당하고 있어 20대를 만날 일이 잦다. 386 세대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옮긴다. "586(50대) 말인가. 몹시 부정적으로 본다. 유체이탈 화법의 꼰대 소리가 무엇보다 싫다. 왜 대기업에 목매느냐고 핀잔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대기업 임원인 식이다." 또 다른 청년의 얘기다. "고생을 덜 해서 그렇다며, 번듯한 직장만 찾지 말고 다양한 선택지를 물색하랍니다. 그런데 386이 만든 이 세상에 어떤 대단한 선택지가 있나요."

20대와 일하며 놀란 점이 돈 얘기를 스스럼없이 잘한다는 것인데, 이들은 그 이유를 "살기 빠듯해서"라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 A는 "실리를 챙겨야 생존이 가능한 게 우리 처지다. 평생 부족하게 살아야 할 테니까"라고 했다. 엄살이 아니다. 지난 10년, 40·50대 소득이 11% 늘어나는 사이 20대의 벌이는 22% 줄었다. 20대는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전후 첫 세대가 될 것이다. 충분히 열 받을 만하지 않은가. 기성세대보다 가난해진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초고속 성장을 만끽한 386이 이해할 리 없다. 청년들은 다 누리고 살고도 남 탓과 잔소리가 몸에 밴 386 세대에 염증을 느낀다. A는 말했다. "386 세대는 운동권 출신이랍시고 '대타협', '약자 보호' 운운하며 명분을 앞세운다. 우리는 먹고살 걱정이 산더미다. 명분보다 실리가 1000% 중요하다." 386 세대가 20대일 때 한국 경제는 거의 매년 두 자릿수 성장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대다.

문 대통령은 21일 유한대 졸업식에서 연설했다. 그는 말했다. "삶의 만족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가능이나 한 얘긴가. 아직도 그는 자신이 청년일 때 시각으로 한국을 보고 있다. '내일은 해가 뜬다'는 희망에 취했던 시대의 언어를 여전히 쓴다. 지금의 젊은이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세상을 만든 건 386 세대다.

[김신영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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