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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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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참혹한데 설레요” 음악 맛집 ‘9와 숫자들’ 송재경의 새로운 시도 ‘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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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듀오 ‘열섬’의 송재경과 조민경(왼쪽부터). 오름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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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난 맛집이 주는 안락함이 있다. 언제든 한결같이 맛있는 음식을 내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국내 인디신에도 ‘믿고 듣는’ 맛집 같은 밴드가 있다. 2009년 결성 이래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사랑받아온 밴드 ‘9와 숫자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 맛집 주방장이 듣도 보도 못한 메뉴로 새 음식점을 차린다면 어떨까. 심지어 세계 시장을 노린 ‘꿈결 같은 맛’이라면?‘9와 숫자들’을 이끌어 온 리더 송재경(38)이 듀오 ‘열섬’으로 돌아왔다. 그의 연인이자 단짝, 밴드 ‘스위머스’의 보컬 조민경(30)과 함께다.

    “반응이 아주 참혹해요. 그런데 되려 설레어요”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한 사무실에서 만난 송재경에게 전날 ‘열섬’으로서 첫 디지털 싱글 ‘인천(ICN)’을 낸 소감을 물으니 이같이 답한다. ‘참혹한 반응’이라니, 의외긴 하다. 그가 10년째 이끌고 있는 ‘9와 숫자들’은 3장의 정규 앨범 전부(<9와 숫자들>, <보물섬>, <수렴과 발산>)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락 부문에서 수상했다. 팬덤도 탄탄하다. 공연을 열 때마다 당연하듯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송재경은 지난해 방탄소년단 측의 러브콜을 받고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 수록곡 ‘낙원’의 작사에 참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송재경이 2016년 영국의 음악 페스티벌 ‘리버풀 사운드 시티’에 초청돼 이름을 알린 밴드 ‘스위머스’의 리더 조민경과 듀오 ‘열섬’을 꾸렸다.

    나름 비장의 ‘드림팀’인 셈인데, 어째서 ‘참혹한 반응’에 설레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송재경은 ‘9와 숫자들’과의 비교를 통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9와 숫자들’에서 국내 인디 음악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범위에서 움직여왔다면, ‘열섬’에서는 그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국내에서는 호응이 적은 비주류 음악이라도, 전 세계를 시장으로 봤을 땐 결코 소비자가 적지 않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국내에서 별 반응이 없다고 해서 낙담하진 않아요.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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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듀오 ‘열섬’의 조민경과 송재경(왼쪽부터). 오름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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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의 첫 싱글 ‘인천’을 들어보면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우리는 꿈속에 온 것처럼 악기나 보컬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음악 ‘드림팝’을 추구한다”(조민경)는 설명에 딱 들어맞는 곡이다. 속삭이는 듯한 두 사람의 보컬과 악기들의 연주가 꿈처럼 아득하게 뒤섞인다. 이 곡은 수년 전 겨울, 두 사람이 친구들과 함께 술에 취한 채로 인천 월미도에 놀러갔다가 ‘뼈가 시리는’ 추위를 느꼈던 기억을 담은 노래다. 이처럼 ‘한국적’인 이야기는 외국의 인디 밴드처럼 낯선 음악과 ‘찰떡’ 조화를 이뤄냈다.

    조민경이 설명을 이어갔다. “‘열섬’은 ‘동북아 드림팝’을 표방하고 있어요. 전 세계 드림팝 팬들과 소통하고 싶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진 ‘인천’ 같은 로컬리티를 아예 버리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한국보다는 넓고 아시아보다는 좁은, ‘동북아시아’ 음악가 정도로 해외 시장에서 인식되길 원했죠.”

    두 사람의 대답에서 오랫동안 몸 담아 온 인디신에 대한 고민이 묻어난다. 특히 송재경은 ‘장기하와 얼굴들’을 배출한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를 2005년 공동 창립했으니 인디신에 발을 들인 지 벌써 14년이 됐다. 그간 인디신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겪었다.

    스스로를 ‘암모나이트는 아니고 공룡쯤 되는’ 인디 2세대로 소개한 송재경은 “예전에는 음반을 내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웠지만, 일단 발매만 하면 몇만장은 기본으로 팔리는 제한된 시장이었다”면서 “그런데 요즘엔 누구나 맘만 먹으면 전국적으로 음원을 유통할 수 있을 만큼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동시에 빈익빈부익부 문제는 심화됐다. 그러다보니 투자 비용이 높은 ‘앨범’ 단위로 음반을 출시하기 어려워지고, 디지털 싱글에 힘이 실리게 됐다”면서 인디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조민경은 “10곡이 넘는 곡들을 통해 어떤 메시지나 서사를 전달하던 앨범의 시대가 지난 것은 아쉽지만, 디지털 싱글을 통해 대중의 반응을 시시각각 살피는 새로운 흐름도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열섬’이 앨범이 아닌 디지털 싱글로 대중에게 첫 인사를 건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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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듀오 ‘열섬’의 싱글 앨범 커버. 오름 엔터테인먼트 제공


    인디신에 불어닥친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인디신은 성차별과의 전면전을 치르는 중이다. 지난해 불어닥친 미투 운동으로 모노톤즈 등 성폭력 가해 사실이 밝혀진 많은 음악가들이 자취를 감췄다. 최근에는 인디 음악가 ‘검정치마’가 새 앨범 <THIRSTY> 수록곡들이 성매매·여성착취를 연상시킨다며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벌써 7년째 여성 음악가로서 활동해 온 조민경은 “성차별과 여성 혐오에 대한 고민 없이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음악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된 곡 중 하나인‘검정치마’ 2집 ‘음악하는 여자’를 보면 여성 음악가에 대한 혐오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해 여성 음악가들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디신 전반에 대한 대중의 실망을 자아냈다.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기엔 너무 해악이 크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재경도 동조했다. 그는 “남성 음악가로서 항상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며 음악 활동에 임하고 있다”면서 “최근부터는 같은 공연에 참여하는 음악가들의 행적이나 평가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디 음악계에도 ‘빨래’하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 음악가의 여성 혐오적인 행동이나 곡이 문제가 됐을 때, 그것을 고수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통렬한 반성과 사과를 해야 실망을 느낀 팬들이 다시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보 같은 약속이래도 언젠가는 지켜낼 거야.” ‘인천’의 가사는 이들이 전하고 싶은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추운 겨울 바다 앞에서 느꼈던 불안감과 회의를 생각하며 이 곡을 만들었다”는 조민경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이뤄질 거야’라며 다독여 주고 싶었다. ‘열섬’처럼 온기를 나누는 노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섬’은 오는 6월 두번째 싱글 ‘핑크젤리’를 낸 뒤, 공연 등을 통해 관객과 직접 만난다. 송재경이 이끄는 ‘9와 숫자들’은 올해 새 앨범 <서울시 여러분>을 발매해 다양한 계층·정체성을 가진 서울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할 계획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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