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박힌 못 같은 인생이 있는가 하면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 같은 인생도 있다. 구름이었다가 빗방울이 되었다가 강물로 흐르다가 다시 구름이 되기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이 사명인 듯한 인생. 1년 365일 중 200일 이상 버스나 기차를 타고 전국을 다니는 박준규 작가(45)의 삶이 딱 그렇다.
"집에 있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고, 거의 매일 나가요. 이유요? 그냥 이런 생활이 너무 좋아요." 세상에 '그냥 좋아서'보다 더 확실한 이유가 있을까. 운전면허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중교통만을 고집하는 이유도 '그냥 좋아서'다. 이렇게 살아온 세월이 25년째지만, 여전히 기차나 버스에 몸을 실으면 25년 전 그 마음처럼 설렌다고.
그는 목적지가 없을 때도 기차를 탔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기차를 타고 간이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즐겼고, 대학 땐 도서관 대신 기차에서 시험공부를 했을 정도로 기차를 좋아했다. "예전엔 청량리에서 정동진행 기차를 타면 7시간이 걸렸어요. 그 기차를 타고 책을 보다가 창밖 풍경 한번 보는 식으로 시험공부를 했죠. 요즘 학생들이 카페에서 많이들 공부하잖아요. 카페보다 기차가 더 조용하고 집중도 잘돼요."
박 작가는 소위 '성공한 덕후'이기도 하다. 기차 타는 것이 좋아 전국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수집한 정보로 책까지 냈고, 이젠 여행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2012년에 출간한 책 '대한민국 기차여행의 모든 것'은 10쇄까지 찍었고, 2014년 출간한 '대한민국 버스여행'은 2쇄를 찍었다. 여행하며 찍은 기차 사진으로 매해 철도 사진 공모전에서 수상하다 보니, 그의 사진으로 제작된 코레일의 기념 우표도 한둘이 아니다. 그에게 'KTX 1호 승객'의 영예를 안겨준 승차권을 포함해 구김 하나 없이 차곡차곡 모은 기차표, 버스표는 수천 장에 달한다. "보통은 기차를 타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승차권 모으기를 좋아하는 사람, 기차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저는 그걸 다 하는 거죠."
요즘 그는 기차보다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타는 즐거움에 더 빠져 있다. 비행기처럼 개별 엔터테인먼트 모니터도 갖추고 있고 좌석을 완전히 뒤로 젖혀 누워갈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호화 대중교통이 따로 없단다.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15% 할인되기 때문에 우등 고속버스 요금에 3000원 정도만 더 보태면 탈 수 있거든요. 가성비 최고예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가 프리미엄 고속버스 마일리지를 가장 많이 쌓은 사람일 걸요? 5%씩 적립되는데 지금까지 12만7000마일리지 넘게 모았어요."
구름처럼 사는 사람, 그의 꿈은 뭘까. "내일 죽더라도 오늘을 후회 없이 살자는 게 제 인생의 목표예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기차와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사람들이 대중교통만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지방은 아직 대중교통 여행 정보가 부족하고, 틀린 정보도 많거든요."
▶▶ 박준규 작가의 대중교통 여행 TIP
● 여수에서 111번 버스를 타면 바다가 보이는 길을 지나고 작은 마을을 통과해 향일암까지 갈 수 있다. 그야말로 낭만적인 시내버스 여행 코스다.
● 광양 매화마을은 원래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매화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한시적으로 광주터미널에서 광양 매화마을까지 직통 시외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에 편하게 갈 수 있다. 올해 축제는 3월 8일부터 17일까지다.
● 1월엔 일출이 늦기 때문에 오전 5시 32분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강릉행 KTX를 타면 7시 8분 강릉에 도착해 경포해변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고서령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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