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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빚내서 버티는 자영업자…대출증가율 10.7% 역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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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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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던 4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말 파산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그는 남편도 조선 경기가 나빠지면서 권고사직을 당해 본인이 두 아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직원도 내보내고 부부가 일했지만 지방 경기가 추락해 가게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자 적자만 쌓여 갔다. 신용카드와 저축은행, 대부업체까지 A씨 앞으로 대출이 총 1억3000만원에 달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하던 50대 남성 B씨는 식당을 운영하며 3000만원 정도 신용대출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인건비 인상과 경기 침체로 매출이 하락하면서 현금 흐름에 마이너스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신용카드로 메꿀 수 있었으나 돌려막을 금액이 커지면서 나중에는 대부업체 대출까지 받아 2000만원 이상 늘어났다. 그는 차라리 금리가 낮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신용대출을 갚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집까지 날려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이다.

지난해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대출이 역대 최고 증가율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18년 4분기 중 예금 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을 보면 전체 대출은 14조3000억원이 늘어난 1121조3000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6.6% 늘어 전년(6.7%)과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세부업종을 들여다보면 서비스업은 전년 대비 9.5%로 큰 폭 늘었다. 그중에서도 자영업자가 몰려 있는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대출이 10.7% 급증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편제된 이래 역대 최고치다. 10년 전인 2009년 3.9%와 비교해도 가파른 상승세다. 대출 잔액도 200조2000억원으로 200조원을 돌파했다.

산업대출은 개인사업자(자영업자)를 포함한 기업·공공기관·정부 등이 은행, 상호저축은행, 상호금융,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예금을 취급하는 금융사에서 빌린 돈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산업대출에는 가계뿐만 아니라 법인이 포함돼 있지만 최근 고용지표와 연관지어 보면 늘어나는 대출금은 한계까지 몰린 자영업자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지표를 보면 특히 서비스업에서도 음식·숙박, 도소매 쪽에서 취업자가 줄고 있다"며 "해당 업종에서 취업자는 줄고 대출금은 늘었다는 건 사업을 확장하거나 투자를 위한 대출이 늘었다기보다 업황이 어려워져 부족한 자금을 대출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성곤 법무법인 로움 변호사는 "자영업자들의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사업을 접어야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생계가 달려 있다 보니 폐업이 쉽지 않다"면서 "폐업을 미루고 버티다 보면 오히려 대출이 점점 더 늘어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609조2000억원에 이른다. 2017년 말보다 60조원가량 불어났다. 빠르게 증가하는 자영업 대출은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같은 자영업 대출 급증세는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대한 '풍선효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을 연 2~7%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어 영업 활로를 중소기업·개인사업자 대출에서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난해부터 자영업 운영·시설자금 신규 대출 비중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여파로 부동산 대출이 까다로워진 것도 일부 영향을 줬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가운데 까다로워진 부동산 대출과 가계 대출은 줄이고, 자영업 대출 등을 늘린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부동산 대출은 전년 대비 15.3% 증가하는 데 그쳤는데, 이는 6분기 만에 최저였다.

한편 제조업 대출은 전년 대비 2조 2000억원 감소하며 2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혜영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과장은 "구조조정에 따른 조선업체 재무구조 개선 등에 따라 감소세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영무 연구위원은 "제조업도 부진한 업황을 고려하면 대출 감소가 결코 좋은 시그널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덕주 기자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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