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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만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맨발의 하이디가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난 초록 들판을 뛰어다니는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위스는 지금 봄을 기다리는 중이다. 겨우내 온통 눈으로 뒤덮였던 '윈터 원더랜드'는 이제 곧 초록 들판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다.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은 해발 300~500m의 알프스 목초 지대다. 흰 눈 아래 꽁꽁 숨겨져 있었던 푸릇푸릇한 들판들과 눈을 뚫고 나지막이 피어난 첫 봄꽃 크로커스가 조금씩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어느 새 피어난 노오란 민들레 꽃, 청명한 파란 하늘이 만들어 내는 오묘한 자연의 조화가 스위스의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들꽃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면 스위스 농부들은 분주해진다. 외양간에 묶어 두었던 소들을 깨끗이 목욕시켜 풀이 자라난 곳으로 보내 방목하는 것이 스위스 농부들의 봄맞이다. 스위스 여행자들이 알프스를 걸으며 항상 들을 수 있는 소들의 방울 소리가 조금씩 알프스 산을 타고 점차 위로 퍼질 것이다.
풀이 풍성하게 자라나는 봄에는 스위스를 찾는 여행자들이 들판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지켜야 할 에티켓이다. 질 좋은 목초는 낙농업에 종사하는 스위스인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목초지를 함부로 훼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천혜의 자연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유제품을 마음껏 즐겨보기를 권한다. 특히 호텔 조식으로 제공되는 치즈와 우유 등 신선한 유제품은 절대 놓치지 말자.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내가 있는 호텔이 바로 치즈 맛집이다.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목초 지대뿐만이 아니다. 스위스의 도심 취리히는 추웠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매년 4월께 젝세래우텐 축제를 연다. 젝세래우텐 광장 한가운데는 겨울의 상징인 눈사람 '뵈외그'가 설치되는데, 솜과 폭죽으로 채워져 있는 뵈외그는 겨울의 상징이다. 뵈외그의 역할은 돌아오는 여름 날씨를 점치는 것인데, 뵈외그의 머리에 불이 빨리 붙어 폭발할수록 맑고 더운 여름이 빨리 온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도 벚꽃 루트가 있듯 스위스에도 봄꽃 루트가 존재한다. 가장 먼저 봄꽃이 피는 곳은 바로 스위스 남부 레만호 주변. 청초한 백색의 수선화, 나르시스가 초록 들판을 새하얗게 뒤덮는다. 4월 말에서 5월이면 새하얀 꽃이 한창 피어나 마치 설원과 같아 보여 '5월의 눈'이라고도 불린다. 종군기자 신분으로 몽트뢰 근교의 샹비에 있는 산장에 머물렀던 헤밍웨이는 나르시스 꽃밭의 화려한 풍경을 극찬하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본격 시작하기도 했다. 곧 시작될 스위스의 봄을 함께 기다려보자.
[김지인 스위스관광청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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