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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걷고싶은길] 부산 절경의 정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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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갈맷길 2-2코스

(부산=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이른 봄맞이를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입춘이 지난 부산은 이미 완연한 봄이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은 따뜻하다 못해 덥게 느껴지고, 콧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이곳저곳에서 하얗게 핀 매화가 여봐란듯이 온몸으로 봄을 증명했다.

산, 바다, 강에 온천까지 품은 '사포지향'(四抱之鄕) 부산의 갈맷길에서 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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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대에서 보이는 해운대 [사진/전수영 기자]



부산 사람이 아니어도,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아니어도 한 구절쯤은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가 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부산에 들어서면서 절로 '부산 가∼알 매기, 부산 가∼알 매기'를 흥얼거렸다.

원곡을 부른 가수의 이름은 몰라도, 익숙한 단 한 구절이 노래 제목이었다는 건 뒤늦게 알았어도, 누구의 입에서든 이렇게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구절이니 이쯤 되면 '부산'과 '갈매기'는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가 아닐까 싶다고 뻔한 선곡을 정당화했다.

부산의 해안길, 숲길, 강변길, 도심길 9개 코스, 863㎞를 아우르는 길의 이름이 '갈맷길'인 것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만큼 자연스럽다.

9개의 코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동백섬, 광안리 해수욕장과 광안대교를 거쳐 이기대와 오륙도까지 부산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들이 이어지는 2코스다.

총 거리가 18.3㎞에 달하기 때문에 민락교(수영2호교)를 기준점으로 2-1코스와 2-2코스로 나뉜다.

한낮의 해를 등지고 걸을 수 있도록 2-2코스의 종점인 오륙도에서 출발했다. 거꾸로 걷는 갈맷길 2코스는 부산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장장 770㎞가 이어지는 해파랑길의 1코스와 고스란히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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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m 절벽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오륙도 스카이워크 [사진/전수영 기자]



◇ 왜장 안고 물에 뛰어든 두 기생이 잠든 곳

용호동 앞바다에 떠 있는 바위섬 오륙도(五六島, 명승 제24호) 역시 부산의 상징이다. 섬의 봉우리가 서쪽에서 보면 5개이고 동쪽에서 보면 6개여서, 혹은 물때에 따라 5개였다가 6개였다가 한다고 해서 오륙도다.

오륙도를 다시금 부산의 명소로 만든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35m 절벽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스카이워크가 들어선 곳의 지명은 말의 안장을 닮았다 하여 승두말로 불리는 곳. 이곳에 깔끔하게 만들어진 해맞이공원을 지나 이기대 수변공원으로 들어선다.

이기대(二妓臺)는 임진왜란 당시 수영성을 함락한 왜군이 경치가 좋은 이곳에서 잔치를 열었는데, 왜장에게 술을 잔뜩 먹이고 취한 왜장과 함께 물에 뛰어든 두 기생이 묻힌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군사작전지역으로 통제되다가 1993년에야 개방됐기 때문에 수십 종의 야생화가 자생하는 등 자연환경도 잘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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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닮은 농바위 뒤로 오륙도가 보인다. [사진/전수영 기자]



장산봉(225m) 동쪽 자락, 바위가 바다로 빠져드는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4.7㎞의 해안 산책로는 갈맷길 2코스의 하이라이트다. 갈맷길은 물론, 해파랑길 전 구간을 통틀어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멈춰 서 어깨를 돌려 비켜줘야 할 만큼 좁은 산길로 시작해 낚시꾼들이 자리 잡은 너른 바위와 아늑한 솔숲, 절벽을 연결하는 5개의 구름다리를 지난다.

등으로 따뜻한 봄볕을 느끼며, 절벽 아래 에메랄드빛 바다와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와 어우러지는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자박자박 걷는다.

문득 고개를 들면, 멀리 해운대 신시가지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천루가 보인다. 지금 발 딛고 있는 곳과 향해 가는 곳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세상인 것만 같다. 서울 못지않게 번잡한 부산의 도심에서 한 발짝 벗어나 만나는 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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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바라보면 갈옷을 닮았다는 치마바위. 해안 산책로는 해안절벽(해식애)과 파식 대지로 절경을 이룬다. [사진/전수영 기자]



◇ 수천만년의 시간이 켜켜이

자갈이 깔린 마당과 매점이 있는 어울마당의 스탠드에 앉아 잠시 한숨을 고른다.

해운대의 마천루도 어느새 불쑥 가까워져 있다. 왼쪽부터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광안대교와 우뚝 솟은 장산, 화려한 마린시티, 동백섬과 누리마루, 달맞이고개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자갈 구르는 소리가 가득한 해변도, 따갑지 않은 햇살이 내려앉은 바위도, 향긋한 바람이 부는 소나무 아래 벤치도, 넋 놓고 앉아 있고 싶은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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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개구멍. 바위의 빈틈에 들어간 자갈이나 모래가 파도에 의해 회전하면서 조금씩 바위를 깎아 만들어진다. [사진/전수영 기자]



오륙도와 이기대는 부산국가지질공원의 지질 명소이기도 하다. 약 8천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의 격렬했던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마그마가 급격히 식어 굳어진 화산암과 화산재 등 쇄설물이 굳어진 응회암으로 이뤄져 있다.

이 암석들이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해안절벽과 파식 대지가 곳곳에서 절경을 이룬다. 암석을 뚫고 올라온 마그마가 굳은 암맥은 유색광물인 각섬석을 함유하고 있어 누구나 맨눈으로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너른 바위 위에 공룡 발자국처럼 패여 있는 건 돌개구멍이다. 바위틈에 들어간 자갈이나 모래가 파도에 회전하면서 바위를 깎아 만들어졌다.

일본 강점기 구리광산은 갱도 입구가 막혀 있지만, 산책로 바로 옆에 있는 해식동굴은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들어가 볼 수 있다. 쪼그려 앉아서, 허리를 잔뜩 굽히고 한없이 들여다보고 싶은 곳도 한두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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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연결하는 구름다리 [사진/전수영 기자]



◇ 도시, 항구, 관광지

동생말을 끝으로 이기대 해안 산책로를 벗어나면 제2의 도시이자, 항구, 관광지라는 부산의 익숙한 얼굴을 차례로 마주한다.

용호부두를 지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와 수변공원을 따라 걷다 육중한 광안대교 아래를 지나면 벚꽃길로 유명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다.

바닷가 쪽으로 난 주민들의 조깅 코스를 따라간다. 우레탄이 깔린 이 길은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 방파제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한낮의 햇살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돌아 나오면 광안리 해변이다. 비수기인 2월, 주말도 아닌 평일인데도 기다란 해변은 관광객과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해변 끝 회센터를 낀 민락항에서 민락수변로를 따라 수영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또 다른 아파트 단지들이 이어진다. 그 길에서 처음 나오는 다리, 수영구와 해운대구를 잇는 수영2호교(민락교)에서 2-2코스가 끝난다.

여기서부터 해운대 해수욕장 끝까지 이어지는 2-2코스는 이기대에서 한눈에 담은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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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레포츠센터 건너 광안리 해변이 펼쳐져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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