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플’ 되려면 근로기준법 준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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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회사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선희(가명)씨는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인터넷 회사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미래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을 함께 일구기를 꿈꿨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기업 문화가 아닌 수평적이고 평등한 직장 문화가 뿌리내린 기업, 창의성과 열정이 발휘되는 회사를 기대하며 일을 시작했다.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30명 넘는 직원 중 정시에 집에 가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 9시에 시작해 빨리 끝나는 날이 밤 12시였다. 늦으면 다음날 새벽 3시였다. 퇴근해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오전에 출근해야 했다. 주말에도 불려나갔다. 수당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회사가 이사한다고 직원들을 토요일에 출근시켜 이삿짐센터 직원처럼 부려먹었다. 수당도, 대체휴가도 주지 않았다. 날마다 계속되는 야근에 대해 임원들은 “제시간에 퇴근 못하는 건 너희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다.
연봉 30% 깎인 계약서에 “사인해”
야근보다 견디기 힘든 건 모욕적인 언행이었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네가 고졸이랑 다른 게 뭐냐?”고 했다. 전체 미팅에서 특정 직원에게 ‘병신’이라는 욕을 자주 내뱉었다. 언론에 갑질이 보도되면서 쌍욕은 사라졌지만, 모욕과 비하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대표가 직원들에게 말했다. “결과가 있기 전에 휴가 사용하기만 해봐라.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주말 출근으로 약속받은 대체휴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연차사용계획서를 내밀고 서명을 받아갔다. 하지만 그 날짜에는 연차를 쓸 수 없었다. ‘연차휴가 촉진제도’를 악용하는 방법. 그렇게 연차도 없어지고, 연차수당도 사라졌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회사는 선희씨가 속한 팀이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개인별 연봉을 30% 깎겠다고 했다. 대표가 직접 바뀐 근로계약서를 내밀고 말했다. “사인해.”
선희씨는 매일매일 업무 보고 미팅이 두려웠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박사급 직원들을 쫓아냈다는 얘기를 하며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회사를 바꿔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권고사직을 당했다. 선희씨는 “무한 야근을 시키는데 수당도 없고 연봉을 마음대로 삭감하고, 스타트업 회사가 갑질의 끝을 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판교의 또 다른 스타트업 기업. 디자이너 윤희(가명)씨는 정규직을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보고 입사원서를 내 합격했지만 실제로는 계약직이었다. 회사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조만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그러나 계약 기간이 끝났다며 쫓겨나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직원이 10명 넘는 회사인데 취업 규칙도, 사내 인사 규정도 없었다. 근로계약서에는 채용 형태와 계약 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았다.
한 달에 초과근무만 50시간 넘게 하는 직원이 많은데, 초과근무수당은 20시간만 지급했다. 밤 12시가 넘어도, 주말에도 사내 메신저로 업무를 지시했다. 맘에 들지 않는 직원은 오늘까지 근무하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통보하고, 곧바로 사내 메신저와 데이터 접근을 차단했다. 당사자가 해고 사유를 물어보면 회사와 맞지 않아서라든가, 소통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네 반상회도 이렇게 운영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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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괴로워질까봐 가해자 징계 꺼리는 피해자
창의와 열정이 있어야 할 회사에 굴종과 강요가 자리했고, 격려와 응원 대신 협박과 모욕이 넘쳐났다. 미래 기업의 화려한 포장지 안에 낡은 권위와 밤샘노동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스타트업 회사에 근로기준법은 ‘스타트’조차 하지 못했다.
스타트업 회사의 인사담당자인 영애(가명)씨는 회사 내 괴롭힘 문제를 알게 됐다. 제3자를 통해 피해자가 직장 상사에게 수개월간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듣고 그는 대표이사에게 보고한 뒤 곧바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피해자는 매니저의 갑질에 너무나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영애씨는 회사 차원에서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피해자는 그동안 너무 괴로웠고 다른 피해자가 나올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있다고 했다. 최근 직장 상사에게 본인의 심정을 털어놓았더니 괴롭힘이 많이 줄어들었고, 때때로 잘해주고 격려하는 일도 있었고, 업무상 분리를 한다고 해도 마주칠 일이 많은데 가해자가 징계를 받으면 본인이 괴로울 거라는 고민이었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징계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영애씨는 피해자가 직장 동료와 불편해지지 않으려는 마음은 충분히 공감했지만,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직만이 아니라 가해자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2차 피해가 없도록 회사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득했다. 현행법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지만, 회사 경영진은 적절한 조처로 직장 갑질을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피해자가 너무 위축돼 있어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피해자에게 최대한 편하게 이야기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모든 조처를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피해자에게 계속 이야기해달라는 것도 또 하나의 괴롭힘, 심리적 압박을 하는 행위인 것 같아 우려됩니다.”
영애씨는 피해자가 회사의 공식적인 조처를 원하지 않는데도 이 사건을 진행해도 되는지, 무엇보다 피해자가 2차·3차 상처를 받거나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은데 고충 처리 담당자가 할 수 있는 조처에 대한 팁(Tip)이 있는지 직장갑질119에 문의했다.
인공지능 시대 한국의 구글을 꿈꾸는 스타트업 회사들의 직장 문화가 ‘쌍팔년’ 수준이다. 최소한의 보호 조처인 근로기준법도 지키지 않으면서 ‘열정팔이’는 최첨단을 달린다. 대체복무를 하는 전문 연구요원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매출이 안정되자 사장은 골프 치러 다닌다. 실력 있는 직원들이 갑질을 못 견디고 퇴사하면, 어디서 배웠는지 변호사부터 사서 손해배상으로 협박한다. 직원들 밤샘노동 시키고 돈 떼먹다가 노동청에 불려나가도 잘못 없다고 큰소리친다.
19세기형 사장님에게 가는 ‘스타트업 지원금’
존중받는 회사에서 창의성이 발휘되고, 평등한 직장에서 열정이 샘솟는다는 상식을 모르는 19세기형 사장님들이 스티브 잡스를 흉내 내며 판교를 휘젓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한국의 애플을 지원한다며 스타트업 회사에 세금을 퍼준다. 불법이 독버섯처럼 번진다.
공짜 야근과 포괄임금. 한국 스타트업 기업의 대명사다. 최근 게임업체들이 노조의 요구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가 불시에 스타트업 회사에 근로감독을 벌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혁신기업의 스타트는 공짜 야근과 포괄임금제부터 없애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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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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