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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인공강우, 대형 청정기…논란 부르는 정부의 미세먼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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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논란 부르는 미세먼지 대책

고농도 미세먼지 불안 커지자

인공강우·대형청정기 대책 발표

미세먼지 있는 날 구름 더 적은데

인공강우는 구름이 먼저 있어야

야외청정기로 미세먼지 없애려면

서울만 20만대…엄청난 전력 필요

“검증 안된 실효성 없는 대책

보여주기식 말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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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비를 내려 대기를 시원하게 씻어내고 공기정화탑으로 거리의 미세먼지를 빨아들이고 …. 미래 기술 유토피아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자연의 문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농도 미세먼지 사태로 여론이 악화하자 정부가 새로운 대책으로 인공강우와 야외 대형 공기청정기 설치 방안을 내놓았다. 실효성을 놓고 전문가들의 비판이 거세다.

올해 들어 고농도 미세먼지 사태가 발생한 직후마다 정부는 생소한 미세먼지 대책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지난 1월 고농도 미세먼지로 여론이 나빠졌을 때엔 서해상에서 인공강우 실험을 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고, 이달 초 더욱 치솟은 고농도 미세먼지 사태 직후(7일)엔 야외에 대형 공기정화기들을 설치하는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검증 안 된 보여주기식 대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 대기과학자는 대형 공기정화기 구상과 관련해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책”이라고 말했다. 이 대책들은 과연 실효성이 있는 것일까?

기상연구 실험이 미세먼지 대책으로

지난 1월11~15일 고농도 미세먼지가 대기를 덮었다. 14일엔 서울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초미세먼지(PM2.5)가 2015년 관측 이래 지역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여론이 커졌다. 대통령도 나섰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 ‘인공강우가 가능한지 등을 고민해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고, 며칠 뒤인 1월25일 서해상에선 국립기상과학원의 기상항공기가 날아올랐다. 인공비의 씨앗 격인 요오드화은을 구름 속에 뿌려 비를 내리게 해서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이날 첫 실험에서 확인된 효과는 없었다.

사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인공비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에 대해 일찌감치 ‘기대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염성수 연세대 교수(대기과학과)는 “미세먼지가 워낙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이니 인공강우 효과를 실험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연구 경험으로 보면 실효성은 지극히 적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공비가 내리려면 적당한 비구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비를 내리기엔 조금 모자라는 정도의 구름”에다 요오드화은이라는 물질을 뿌려야 인공비 효과를 볼 수 있다. 염 교수 연구진은 구름 관측 자료와 미세먼지 자료의 상관관계를 살피는 예비조사를 해보았다. 그는 “조사를 해보니 미세먼지가 적은 날에 비해서 많은 날에는 충분한 구름이 생기는 빈도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기상 조건 때문이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도 “일반적으로 미세먼지가 많이 발생할 때의 기상 상태는 고기압이고 구름이 많지 않은 편”이라며 “더구나 산악 지형이 없는 서해상에서 미세먼지를 감소시킬 정도로 많은 비를 인공으로 내리게 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비를 아무 때에나 내리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세계기상기구(WMO)의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보고서(<세계 인공증우 활동 전문가 평가 보고서>)를 보면, 인공눈비 효과를 내려면 구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게다가 모든 구름에서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겨울철 산악 지형 부근에서 상승기류를 받는 구름(‘겨울철 지형성 구름’)이나 대기가 불안정해 생기는 덩어리 모양의 구름(‘대류운’)을 대상으로 인공눈비 실험이 주로 이뤄진다. 이런 까다로움 때문에 인공강우의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강우에 개입해 그 양을 좀더 늘리는 ‘증우’(증설)의 방법이라고 보고서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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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서해상의 인공비는 지형 조건에서도 어려움이 있는데다 일반적으로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구름도 적은 편이기 때문에, 인공강우를 미세먼지 대책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공강우가 ‘보여주기식’의 미세먼지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운좋게 인공비가 내린다 해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를 낼지도 의문이다. 조천호 전 원장은 “기상 관측자료와 미세먼지 농도 변화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중국 연구진의 2013년 연구를 보면 호우 이상의 강한 비에서 농도가 크게 낮아졌고 약한 비에선 미세먼지가 거의 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비 자체보다는 바람이 미세먼지 농도 변화에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염성수 교수는 “이번 실험 이전에 전세계적으로 인공강우를 미세먼지 대책으로 이용하는 실험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본래 인공강우 연구는 구름의 특성을 분석하는 기상학 연구와 가뭄 지역의 수자원 확보 기술개발을 위해 이루어져왔다. 한종철 국립기상과학원 응용기상연구과장은 “구름 특성을 잘 알아야 구름 변화의 예측도를 높일 수 있고, 이에 따라 기상예보 슈퍼컴퓨터의 시뮬레이션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세먼지 대책이) 인공강우 실험에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외부 요구도 많아 본래 실험 자원의 일부를 미세먼지 저감 효과 검증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인공강우 실험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올해엔 중국과 인공강우 공동실험도 추진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거리 공기정화 하려면 새 발전소 필요?

이달 초 엿새 동안 또다시 ‘관측 사상 역대 최고’의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난 직후인 지난 7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여러 미세먼지 대책 중에 야외에 대형 공기정화기들을 설치하는 방안을 함께 밝혔다. 1억~2억원짜리 공기정화기를 개발해 건물 옥상 등에 설치하면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구상이었다. 사업이 잘 시행되면 5000억원가량의 예산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나타냈다.

이런 계획에 대해 김동술 경희대 교수(환경공학)는 “산산이 깨진 컵 조각들을 다시 붙이려면 많은 에너지와 시간, 비용이 들어가게 마련이듯이 이미 넓디넓은 대기에 퍼진 미세한 오염물질을 회수하겠다는 건 경제성과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라며 “무엇보다 검증 절차도 생략한 채 실행 구상을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시민들이 체감할 정도의 효과를 내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공기정화기가 필요할까? 정용원 인하대 교수(환경공학)가 직접 계산해보았다. 야외 공기정화기가 어떤 규모나 방식인지 정해지지 않았으니 일단 네덜란드 디자이너가 만들어 화제가 된 7m 높이의 공기정화탑(‘스모그 프리 타워’, 1시간당 주변의 3만㎥ 부피 공기를 빨아들여 정화)을 기준으로 삼았다. 정 교수는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공기정화탑이 몇개 필요한지 계산하기 위해 여러 조건을 보수적으로 단순화하는 ‘과감한 가정’을 했다는 점을 먼저 밝혔다.

그가 계산한 결과를 보면, 높이 20m, 면적 1㎢의 공간에서 1시간 안에 미세먼지를 모두 없애는 데엔 공기정화탑 667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으로 줄이려면 333대가 있어야 한다. 만일 서울 전역에서 절반 저감 효과를 보려면 대략 20만대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전국에 설치한다면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서울 전역에서만 20만대를 가동하는 데엔 영흥화력발전소 1기 생산전력의 4분의 1 이상이 필요해진다.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 교수는 “만일 수많은 공기정화기를 필터 교환 방식으로 가동하면 관리가 만만찮을 것이고 전기집진 방식으로 가동하면 다른 오염물질인 오존을 발생시켜 새로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이희관 인천대 교수(환경공학)는 “대기에 마이크로미터 크기로 흩어진 오염물질을 엄청난 양의 공기를 빨아들여 회수한다는 건데,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생각할 수 없다”며 “미세먼지가 나온 다음이 아닌 미세먼지의 배출 단계에서 차단하는 게 비용이나 효율에서 훨씬 낫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장재연 아주대 의대 교수(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야외 공기정화기를 둔다는 것이 결국에 ‘대피소’를 만들자는 발상과 비슷한데, 곳곳에 대피소를 만들 정도의 위급 상황도 아니고, 설사 그토록 위급한 상황이라면 공기정화기 정도로 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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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공기정화 장치가 화제가 된 예는 몇차례 있지만 도시 규모에서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제시되지는 못했다. 2015년 무렵부터 네덜란드에서 등장한 ‘스모그 프리 타워’ 공기정화탑은 예술과 테크놀로지를 융합한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대기오염 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주목받았다. 2016년 중국 베이징에 보내져 더 큰 화제가 됐지만 실질적인 저감 효과를 내진 못했다.

훨씬 큰 규모인 거대 공기정화 시설도 등장한 적이 있다. 중국 시안에 설치된 100m 높이의 공기정화탑은 신재생 에너지로 작동하는데 아래쪽에서 빨아들인 공기를 태양열로 데워, 부력으로 여과장치 달린 굴뚝 구조물을 통과하게 해 공기를 정화한다는 구상이다. 중국과학원(CAS)의 웹사이트를 보면, 연구진은 2018년 4월 기자회견을 열어 10㎢ 면적의 주변 지역에서 초미세먼지(PM2.5)를 15%가량 줄이는 효과를 냈다고 밝혔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그해 이런 새로운 시도를 보도하면서 거대 시설이 배출 자체를 막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인지는 회의적이라는 전문가 평도 함께 전했다. 중국 연구진도 “이 기술은 보조 수단이며 주요한 미세먼지 대책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환경부 관계자는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국형에 맞는 기술과 제품이 제시되면 시범 설치해 효과를 전문가들과 검토하고 확대 시행 여부를 그때 결정하겠다는 구상일 뿐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진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작 중요한 정책들 추진 약해져”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구상들이 왜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잇따라 발표될까?

장재연 교수는 “중국 영향이 얼마이고 북한 영향이 얼마이고, 이런 식으로 외부 영향만을 강조하다보니 ‘우리가 손댈 수 없는 오염원이 덮친다’는 생각에 다다르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기면서 엉뚱한 대책이 나오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여주기식 대책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정작 중요한 배출원 파악이나 배출원 감축 관리 같은 기본정책들을 추진할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이희관 교수는 “집안 생활비를 줄이려면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하듯이 우리의 현재 배출량 정보에서 빠지거나 작게 평가된 분야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 개선 예산의 80%가 교통 분야에 쏠려 있는데 이는 실제 미세먼지 배출 구조와도 다르다”며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주거 배출 분야의 배출량은 정확하게 파악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용원 교수는 “야외 공기정화기는 상징적으로 대기질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설치물 정도로 충분하다. 예산은 미세먼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데 우선해 쓰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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