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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채우는 여행의 희열-진짜 제주를 보여주는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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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숱한 여행 지점이 있다. 도시의 카페만큼 많은 오름이 있고 어디에서든 10~20분이면 바다에 도착할 수 있으며, 마을과 들판에는 푸른 프로방스와 검은 돌담, 그리고 여전히 마을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돌집을 만날 수 있다. 해녀 물질 장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보았다고 제주를 전부 본 것은 아니다. 제주의 참 모습은 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꼭 그것을 보라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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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공원

오는 4월3일은 제주4.3이 일어난 지 71년이 되는 날이다. 4.3 뒤에 아무 단어도 붙지 않은 것은, 그 4월3일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4.3사건, 4.3사태. 4.3항쟁 등등. 제주 원주민들이 4.3에 대한 사적인 의견을 내놓는 것을 꺼려하기도 한다는 점(적어도 내 이웃들은 그렇다)은 공통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분명한 자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해방된 국가의 기틀을 스스로 다지기 위한 인민위원회가 전국에 설치되었지만 위원회는 미군정에 의해 모두 해산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총독부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조선인들이 다시 현장에 복귀, 친일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세력들이 다시 사회의 주류가 되었고, 그 와중에 끝까지 인민위원회를 고수하며 자주적 통일 정부를 주장하던 곳이 제주도였다. ‘인민위원회’의 ‘인민’은 공자도 즐겨 사용하던 단어로, 당시만 해도 ‘국민’, ‘시민’의 뜻으로 흔히 쓰이던 표현법이었다. 아무튼 그런 상황 속에서 1947년 3월1일 제주도 3.1절 28주년 기념식장에서 기마경찰의 말에 의해 어린아이가 다쳤고, 대중은 격분해 곧장 시위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로 저항과 진압, 무장 저항과 강경 토벌 작전이 충돌하면서 당시 제주 인구의 1/10인 3만여 명이 숨진 사건이 바로 4.3이다. 저항 세력도 많이 죽었고, 저항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4.3은 한라산 금족구역이 해제된 1954년 9월, 일단의 막을 내렸지만 그 진상을 확인하는데 수십 년의 시간과 갈등의 곡절을 겪어야 했고, ‘4.3사건이 국가 권력의 잘못’이라는 결론을 근거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가 2003년에 있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4년에는 4월3일을 ‘국가 지정 추념일’로 지정했다.

4.3평화공원은 그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이 실체를 인정하고 화해하고, 다시는 같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말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조성한 공원이다. 공원의 위치는 제주시 봉개동으로 해안선에서 약 10km 떨어진 중산간 지역이다. 공원 관람 순서는 따로 없지만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 기념관에는 4.3과 해방정국 한국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전시관이 연출되어 있다.

전시는 인공 동굴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1948년 4월3일 무장봉기가 시작된 지 6개월 뒤인 그 해 10월, 정부는 4.3 세력을 ‘강력하게 토벌’하기 시작했다. 해안선 5km 이상 지역을 ‘적성구역’으로 간주, 그 지역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포고령도 그때 나왔다. 저항 세력과, 미처 포고령을 인지하지 못해 그냥 마을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토벌대에 의해 살해당하기 시작했고 결국 한라산 곳곳의 동굴 속으로 피신했다. 동굴에 숨어살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발견되어 몰살당하거나 생포된 이후에 절차 없이 총살형에 처해졌다. 전시 동굴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거나 상징적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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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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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서 만나는 해방정국의 실체

제1관 역사의 동굴은 4.3은 물론 제주의 미니멀한 특징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제주에는 한라산 폭발 때 형성된 동굴이 엄청 많다. 만장굴, 협재굴 등 관광객에게 공개된 명소 외에, 동굴 입구는 발견되었지만 내부 탐사가 이뤄지지 않아 출입을 제한하는 동굴들도 산재해 있다. 행정 체계가 허술했던 4.3 당시에는 마을 사람들만 알고 있던 동굴도 많았다. 제주의 동굴과 4.3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알고있는 사람들은 이 전시관에 들어갈 때 마음이 서늘해짐을 느끼게 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니 ‘비문 없는 비석’, 즉, ‘백비’가 황망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아직 개념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4.3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비록 4.3이 역사적 사건으로 조사되기 시작해 일단의 결론이 나오고 대통령의 사과까지 있었지만, 아직도 확인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오늘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백비 안내문은 ‘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비로소 비문이 새겨질 것이며, 누워 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 날이 올까? 회의와 함께, 역사의 강물은 바다에서 만난다는 보편적 진리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일어난다. 이어지는 2~6관에는 1947년 3월1일에 발생한 3.1운동 기념식장 사고와 발포사건, 1948년 4월3일 무장봉기, 5.10 단선반대(남한 단일 선거 반대), 남한단일정부 반대 운동 등 정치적 이슈로 확대된 4.3에 대한 정부의 탄압 상황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4관 ‘불타는 섬(초토화와 학살)’에서는 초토화 작전과 민간인 대량학살, 그 이후 한국전쟁 기간 형무소 재소자 학살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4.3 희생자의 80% 이상은 이때 희생되었다. 원통형의 하얀 방, 벽에는 죽음의 다양한 형상들이 하얀 붕대로 둘러싸인 부조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언저리에는 ‘다랑쉬굴의 비극’이라는, 동굴에 숨어있다 몰살당하고, 40년 뒤 그 유골이 발견되었으나 그 어떤 조사도 없이 화장되어버린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발굴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전시장도 만날 수 있다. 5, 6관에서는 4.3의 후유증과 진상규명 운동 내용과 성과, 숙제 등이 자료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 짧지만 잔혹한 역사의 동굴은 피해자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6관을 지나면서 끝이 난다. 동굴을 나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기획전시장’으로 연결된다. 이곳에서는 4월14일까지 ‘제주4.3생존희생자그림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4.3 즈음에 어린 시절을 보내다 어처구니 없는 피해를 당한 뒤 끔찍한 평생을 살아온 오늘의 노인들이 4.3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그림은 천진한 모습이지만 그 내용은 처참하기 짝이 없다. 또한 그런 아픔이 당신들만의 일이 아닌, 그 후손들, 이웃들을 통해 제주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라는 추론도 하게 된다. 적지 않은 제주 토박이 노인들이 4.3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닫고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 보는 그 심정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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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생존희생자 그림기록전’은 생존 희생자들이 당시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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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위패를 모신 위패봉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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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의 장례식,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념관 밖으로 나가니 짓눌렸던 가슴이 조금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공원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풍경을 하고 있다. 서남쪽 멀리 푸른 하늘 아래로 한라산 봉우리가 아련하게 보이고, 공원 뒤로는 해발 600m의 봉개거친오름 능선이 공원 한 면을 감싸고 있다. 오솔길을 걷노라면 위령광장, 위패봉안실, 행방불명인표석, 봉안관, 위령탑, 귀천, 각명비, 모녀상, 어린이체험관, 문주 등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서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4.3평화기념관 이외의 모든 시설물들은 비교적 낮은 지형에 위치하거나, 돌담으로 둘러 쌓여 있거나, 시각 안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시각 디자인 때문일까? 조형물 하나하나를 볼 때 그곳에 집중하게 되고, 다음 공간으로 향하는 길도 실제 거리보다 다소 멀게 느껴지곤 했다. 개인적으로 ‘비설’이라는 작품이 가슴에 절절히 들어왔다. 한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앉은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달팽이 형태로 나 있는 돌담 겸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면 조형물 가까이 갈 수 있는데, 이 작품은 1949년 1월6일, 지금 4.3평화공원이 있는 바로 이곳 봉개동에 토벌대가 투입되어 작전을 펼치자 그들의 총구를 피해 젖먹이 딸을 등에 업고 달아나다 총에 맞아 죽은 마을사람 ‘변병생 모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조각품이다. 모녀의 시신은 훗날 행인에 의해 눈더미 속에서 발견되었다. 작품을 보고 있자니 당시 지옥 같았을 상황이 떠올라 심신이 얼음장이 된 듯 움직이기 힘들었다. 한숨 쉬고 되돌아 나서는 길, 돌담에 새겨진 제주 전래 자장가 ‘웡이자랑’ 음각이 여운으로 가슴에 되새겨진다.

분화구를 닮은 곳에 설치된 위령탑을 향해 가는 길, 위령탑 둘레에는 4.3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성별, 당시 나이, 사망 일시, 장소 등을 기록한 각령비들이 나란히 서 있다. 각령비 뒤로는 억새밭이 무성한데, 갑자기 노루 한 마리가 후다닥 달아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거친오름, 공원이지만 여전히 자연의 품에 있는 4.3평화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중앙 위령탑 윗쪽에는 ‘귀천’이라는, 천상병 시인의 시 제목과 같은 이름의 조각품이 있다. 성인 남녀, 청소년 남녀, 어린 아기 등 총 5개의 수의를 표현했는데, 4.3 당시 학살 당한 피해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위령광장을 가로질러 위패봉안실에 들어가 보았다. 4.3진상조사 때 일단 밝혀진 희생자 1만4232명 중 조사 당시 생존희생자 115명을 제외한 1만4117명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저항 세력 가족이었다는 이유로, 경찰 군인, 그리고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또는 특별한 이유없이 희생된 뒤 구천을 떠돌던 영혼들에게 이승의 흔적을 새겨주기까지 꼬박 6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렇다고 4.3희생자 모두의 장례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위패봉안관 근처 ‘봉안관’에 모셔져 있는 유해는 400기로 그나마 ‘4.3유해발굴사업’ 때 발굴된 게 전부다. ‘행방불명인 표석’에는 시신을 찾을 수 없는 희생자 표석 3896기가 세워져 있다. 끝나지 않은 참혹한 역사의 물길 속에서도 제주4.3은 그 진실의 실체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길과 방향을 잡았고, 그 끝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명제도 세워져 있다. 제주4.3은 제주도에서 일어난 국지적 사건이 아닌,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울퉁불퉁한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자 기록이다. 자칫 황량하고 슬픈 공간으로 오해받을 것 같은 제주4.3평화공원. 그러나 이런 일부 선입견과 달리 이곳은 제주 사람들은 물론 이주민, 여행자들의 발길이 늘 이어지고 있는, 조용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제주의 속 깊은 여행의 필수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위치 제주시 명림로 430(봉개동)

-시간 09:00~18:00(입장 마감 17:00), 첫째·셋째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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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을 닮은 하늘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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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돌문화공원

화산섬 제주는 오랜 기다림 끝에 흙을 만났고, 식물이 생겼고, 그리고 동물을 포함한 생태계가 형성된 고지대이다. 이제 농사도 짓고 말과 소가 뛰어노는 초치도 풍성한 지역이 되었지만, 여전히 돌 투성이 섬이다. 제주의 역사는 돌과 함께 한 시간이다. 밭을 만들기 위해 개간을 하며 나온 돌무더기들로 밭담을 만들었고, 그 돌로 집을 지었고, 성을 쌓기도 했다. 제주돌문화공원은 한 마디로 제주의 자연과 돌,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전시한 곳이다. 이곳에는 세 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는 신화의 정원, 2코스는 제주돌문화전시관, 3코스는 제주전통돌한마을이다. 신화의 정원 코스는 우묵 패인 곳에 건축된 제주돌문화전시관 옥상격인 ‘하늘연못’에서 시작된다. 하늘연못은 한라산 영실에서 전해 오는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 신화 속의 설문대할망은 키가 4만9000m나 되는 거녀였다고 한다. 사실 신화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신화 속 할머니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데, 자식을 위해 끓이던 죽 솥에 빠져 죽었다는 설과 큰 키를 자랑하다 대형 연못인 물장오리에 빠져 죽었다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늘연못’은 바로 신화 속 죽 솥, 물장오리, 그리고 한라산 백록담을 표현한 것으로, 투명하고 청명하고 고요하며 단순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하늘연못 주변을 거닐다 계단을 내려가면 제주돌박물관이 있다. 전시관에는 제주수석전시관, 제주 화산 활동을 주제로 한 지질, 지형, 동굴, 지하수, 우주와 지구 등 제주형성전시관 등을 볼 수 있다. 2코스는 야외에 있는 제주돌문화전시관으로, 선사인들의 주거공간으로 이용되었던 빌레못 동굴, 북촌리 바위그늘 유적, 우도동굴 유적과 사후 세계를 보여주는 고인돌과 선돌 전시장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용담동 무덤 유적을 재현한 선사 탐라시대의 돌문화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의 돌 문화와 제주의 돌문화, 제주 민간신화, 제주 동자석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비교적 단촐하나 3코스는 제주전통돌한마을로,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옛마을을 약식으로 재현해 놓았다.

-위치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023

-시간 09:00~18:00(매표 마감 17:00)

-입장료 어른 5000원, 12세 이하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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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박물관

해녀 없는 제주는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은 제주의 삶이자 역사며 일상이고 풍경이다. 해녀들은 제주를 먹여 살렸고, 어업 활동에 필요한 기술과 도구를 조금씩 발전시켰고, 그 노하우를 육지와 아시아 곳곳에 전파했다. 제주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것도 이런 디테일들을 근거로 한다. 물질을 못할 땐 밭에 나가 흙을 일궜고, 집안, 마을의 대소사도 당당히 챙겼다. 나라를 잃었을 때 독립운동을 맨 먼저 시작했고 무엇보다 그들은 양성평등을 입 밖에 내지 않으면서도 양성평등을 이루며 살았다. 오래 전 해녀들은 벌거벗은 채 물질을 했고, 그들 사이에는 남자들도 몇몇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런 상황에서도 해녀들은 부끄러워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물질에 몰두했다고 전해진다. 해녀들 사이에는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오랜 이야기가 있다. 물 속에 들어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채취를 하고, 물 밖으로 올라와 잠깐 숨을 들이킨 뒤 다시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해산물을 챙겨 올라오는 일을 평생 하며 살기 때문이다. 열 살도 되기 전 물질을 시작, 몸을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될 때까지 해녀로 살아가는 그들은, 알면 알수록 고맙고 존경스럽고 곱단한 존재들이다.

해녀박물관은 해녀를 중심으로 하는 제주의 의식주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1전시실에서는 1960~1970년대 해녀들이 살았던 제주 가옥과 내부 살림살이들, 그리고 해녀들이 지어 가족과 함께 했던 밥상, 음식들을 볼 수 있다. 어촌마을 풍경, 제주의 세시풍속, 해녀의 생활 도구, 제주의 음식 문화, 해신당과 굿 등 문화 전반을 생생한 재현 프로그램을 통해 보고 확인할 수 있다. 2전시실은 해녀의 물질 현장을 재현해 놓았다. 세찬 바람 속에서 돌담으로 만든 불턱에 들어가 옷도 갈아입고 물질 정보도 나누고, 물질 포인트도 정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는 전시 공간은 재현 공간이지만 해녀들의 삶이 생생하게 와 닿는 곳이다. 물옷과 물질도구들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순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제주의 심플한 풍경과 썩 어울린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박물관 학예사들이 연구한 해녀의 역사, 해녀공동체 부분은 해녀의 역사가 수백 년을 이어온 힘이 무엇인지 엿보게 되는 곳이다. 3전시실에서는 해녀들의 일생을 그려놓았다. 어린 시절 첫 물질부터 상군해녀가 되기까지의 과정, 육지와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찾아가 출가물질을 했던 그 시절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해녀들이 영상을 통해 직접 전해주는 삶과 물질 이야기를 모니터 앞에서 듣노라면, 가슴이 뿌듯해지고 때론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을 선사받을 수도 있다. ‘어린이해녀관’은 아이들에게 제주 해녀를 살짝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숨참기’, ‘물 위로 점프’, ‘그물다리 건너기’, ‘고망낚시’ 등을 경험해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곳이다.

-위치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시간 09:00~18:00, 매표마감 17:00, 어린이해녀관 운영시간 09:00~17:00

-입장료 어른 1100원, 12세 이하 무료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1호 (19.03.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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