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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최저임금이 부른 '12월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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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경기도 안양의 한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김모(20)씨는 작년 12월 갑자기 사장으로부터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고 하던 일을 그만뒀다. '최저임금이 또 오르는데 장사가 너무 안 돼서 급여를 맞춰주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최저 시급을 받으며 하루 4시간씩 주 2일만 근무하는 상황이었기에 뜻밖의 통보였다. 김씨는 "사장님이 바쁠 때 부르겠다고 했는데 딱 한 번 연락이 오고, 이후로는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충남의 한 농공단지에서 위생·청결 제품을 만드는 A사는 작년 12월 연구·생산·관리직 전체 30여명 중 10명 가까운 직원을 내보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 부담'이었다. A사 관계자는 "위생·청결 제품은 생활필수품은 아니어서 경기가 안 좋으면 바로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크다"며 "1~2년 전부터 매출이 크게 줄기 시작해 회사가 존폐 위기에 몰렸는데 이듬해 최저임금이 또 크게 오르는 상황은 감당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인력을 감축했다"고 말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최저임금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오르자 이에 큰 부담을 느낀 영세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연말인 작년 12월에 문을 닫거나 직원들을 대거 내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에서 입수한 통계청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일하는 곳의 경영 여건 악화로 원치 않는 퇴직을 한 사람(임금근로자)은 16만4453명으로 전년(12만1827명)보다 35% 늘었다. 또 장사를 하다가 인건비 부담 등으로 상황이 악화돼 아예 문을 닫은 자영업자는 2만1880명으로 전년 12월(1만2342명)보다 77.3%나 급증했다. 즉 경영 여건이 안 좋아져서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은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는 18만6333명에 달한다. 전년의 13만4169명보다 38.9% 증가했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한 번 크게 인상(16.4%)됐을 때는 일단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보려 했으나 경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최저임금이 올해 다시 10.9%로 대폭 오르자 결국 새해가 오기 직전 폐업과 인력 감축으로 대응한 셈이다.

통계청은 매달 '경제활동 인구 조사'를 하면서 실업자와 비경제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이전 직장과 관련한 퇴직 사유를 묻는다. 총 11가지인 퇴직 사유는 크게 자발적·비자발적 퇴직으로 구분되는데 비자발적 퇴직에는 직장의 휴·폐업, 명예퇴직·정리해고, 일거리가 없거나 사업 부진, 임시 또는 계절적 일의 완료 등 4가지가 들어간다. 비자발적 퇴직 사유 중 '임시 또는 계절적 일의 완료'는 겨울철 스키 강사, 계약직 근로자처럼 사업체 경영 여건 악화와는 관련 없는 퇴직자가 대부분이어서 제외했다.

작년 12월의 임금근로자 중 비자발적 퇴직자 증가율을 세부 유형별로 살펴보면 직장의 휴·폐업에 따른 증가율(87.8%)이 가장 높았다. '명예퇴직·정리해고'와 '일거리가 없거나 사업 부진'에 따른 퇴직자 증가율은 각각 42.5%, 23.9%였다.

작년 12월이 '죽음의 달'이 된 것은 자영업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자영업자들은 직원을 줄이며 버틸 수 있었지만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충남 천안에서 2016년부터 당구장을 운영하던 김모(45)씨도 매출 감소에 더해 최저임금까지 추가로 오르는 상황이 되자 작년 12월 폐업 신고를 했다. 김씨는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일주일 내내 문을 열다 보니 아내와 함께 번갈아가며 일을 해도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아르바이트 직원을 한 명 쓰다가 인건비 부담 때문에 포기했는데 대출도 불어나고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문을 닫기로 했다"고 말했다.

추경호 의원은 "작년 12월 비자발적 퇴직자가 급증한 것을 보면 2년 연속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됐는지를 알 수 있다"며 "정부가 실패를 받아들이고 일자리 정책의 대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oasi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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