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이 제작한 영화 하얼빈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천만 영화’ 서울의봄보다 개봉 2주 차 관객 수가 많다. 영화에는 안중근 의사의 장군 시절이 담겼다. 흥행 비결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측근들의 오판에 따른 시계 제로 탄핵 정국의 어지러운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국가 리더가 사실상 부재한 탓이다.
곧 새해가 밝는다. 그러나 나라는 비상(非常)이다. 사회 분위기는 어둡다. 비상시국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새 리더십을 묻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답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은 정쟁과 반목만 거듭한다. 만나는 기업인들은 입을 모아 “내년은 더 힘들 것”이라고 한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곳은 해외 시장에서 잘 나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내년이 더 힘들다는 건 연말마다 듣는 얘기다. 그러나 2025년은 정말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1%대 국내총생산(GDP) 저성장 전망, 급락하는 원화 가치, 침체한 소비심리 등 최근 경제 상황은 최악이다. 새해 1월 2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앞길이 더 막막해질 것이란 걱정도 크다.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이 쓰나미급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중국의 저가 공세도 철강·석유화학을 넘어 더 확산할 것이다.
이 같은 경제 상황만을 보고 걱정하는 얘기는 아니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한국의 계엄령 참사에 대한 견해: 민주주의의 등대에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의 위기는 빈곤과 황폐함에서 벗어나 세계무역과 투자, 기술 흐름의 중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드문 민주주의 성공 사례가 된 나라를 더럽히고 있다”고 적었다. 성공한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방향성이 안 보인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어떤 위기든 언젠가는 끝난다는 점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자연학’에 “자연은 진공을 용납하지 않는다(Nature abhors a vacuum)”고 썼다. 자연이 공간을 비어 있는 채로 두지 않고 어떤 물질로라도 당장 채우듯, 그 어떠한 위기에 따른 리더십 공백은 또 다른 리더십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언젠가는 우리도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어떤 리더십이 그 자리를 채우느냐가 문제다. 리더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나갈 바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안중근 의사는 온몸을 던져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항일 독립 투사였다. 나라의 독립과 민족을 사랑하는 숭고한 정신을 몸소 보여줬다.
그와 같은 난세의 영웅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리더가 우리 사회에 새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상식에 기반한 소통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더 이상 말로만 협치하는 리더는 없어야 한다.
연말 우리는 상처 받았다. 잠시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서야 한다. 희망은 고통을 마주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엔 더 단단한 재생의 힘이 세진다고 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좌절보다는 희망으로 을사년(乙巳年) 새해를 맞자.
김문관 생활경제부장(moooonkwan@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