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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탈북 친구 찾아간 아이들, 노래로 함께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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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 12명, 北 출신 21명과 코리아청소년합창단서 올 첫 연습

7월엔 영국 의회서 공연 추진도 "말투 달라도 노래 부르니 하나 돼"

2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음악 공연장. 50석 규모 공연장에 '엄마야 누나야'가 울려 퍼졌다. 평안북도 구성 출신인 김소월의 시(詩)에 음을 붙인 곡이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조원혁(14)군과 서울에서 자란 김예슬(17)양이 화음을 맞추다 시선이 마주쳤다. '파트너가 어떠냐'고 하자 조군은 "처음 만나 서먹했지만 노래를 같이하려면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하니까…"라고 했다. 조군은 5년 전 아버지와 함께 탈북해 한국에 왔다. 김양은 "말투도 다르고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화음을 맞추다 보니 친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남북 출신 청소년으로 구성된 코리아청소년합창단은 오디션 겸해 올해 첫 연습을 했다. 탈북민 자녀 21명, 한국에서 나고 자란 6명 등 기존 단원에 이날 오디션을 거친 비탈북민 청소년 단원 6명이 합류했다. 새로 단원이 된 이서윤(17)양은 "북한 출신 친구들과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했다. "설레기도 하고 함께 연습하며 친해지고 싶어요." 신입 단원을 맞는 날이라 기존 합창단원들은 정식 공연복도 입었다.

조선일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공연장에서 남북 청소년 33명이 모인 코리아청소년합창단 단원들이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합창단은 다음 달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통일을 향한 어린이들의 합창’ 공연을 연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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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은 작년 8월 창단했다. 탈북민 대안학교 '두리하나 국제학교'가 2013년 만든 탈북 청소년 합창단(와글와글 합창단)에 한국 출신 청소년들이 합류했다. 하지만 지휘자인 김희철씨나 단원들에게 올해는 더 특별하다. 작년에는 소프라노, 알토만 있었지만 올해부터 테너, 베이스 등 다른 파트를 추가해 정식 합창단 모양새를 갖췄다.

김씨는 "지난해 4개월이 시범 운영 기간이었다면 올해는 사실상 합창단의 원년(元年)"이라며 "아이들 사연이 아니라, 음악으로 승부하는 합창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연습량과 공연 횟수도 늘려 오는 7월 영국 의회에서 남북통일을 주제로 공연도 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지휘자 김씨는 2015년까지 국제 구호 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어린이합창단을 지휘했다. 월드비전 어린이합창단은 6·25 전쟁고아들이 만든 합창단이 모체다. 김씨는 탈북 청소년 합창단 이야기를 듣고 작년 8월 합류해 남북 청소년 합창단으로 재편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고민이었다고 한다. 어른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합창단을 하며 빠르게 가까워졌다. 탈북민 출신인 황윤미(17)양은 "연습은 어려워도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순간에는 나와 우리 단원들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통일 후 북한에 보육원을 세우는 게 꿈인 황양은 "이런 자신감으로 학교생활도 잘 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탈북민 아들로 중국에서 태어난 김성(19)군은 새로 합류한 합창단원들에게 중국어 이름을 지어주며 장난을 걸었다. 김군은 "이렇게 서로 불러주고 친해져야 노래도 잘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 출신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합창단에 참여한 김나영(17)양은 "원래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작년 합창단을 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꿈이 바뀌었다"고 했다.

합창단원들은 6월부터 병원·복지관·요양원 등에서도 공연할 계획이다. 지휘자 김씨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이들에게 따뜻한 노래를 들려주자는 취지"라고 했다. "거창한 통일 이야기보다 아이들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는 것이 진짜 통일로 가는 길인 것 같아요." 코리아청소년합창단의 올해 첫 공연은 다음 달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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