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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스페인 北대사관 습격사건의 재구성…‘아드리언 홍’과 美F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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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태범 기자] [the300]김한솔 보호 자유조선이 결행, 美국무부, FBI 연루설 부인.. 북미관계에 미묘한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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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AP/뉴시스】26일(현지시간) 스페인 법원은 지난 2월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괴한 10명 중 한국인, 미국인, 멕시코인 등 3명을 기소하면서 이들이 당시 빼내 간 자료 제공을 위해 FBI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10명이 연루된 '범죄조직'이 북한 대사관에 침입해 상해, 협박,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다양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22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괴한들이 침입해 공관 직원들을 결박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훔쳐 달아난 바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스페인 마드리드 소재 북한 대사관에서 차량 한 대가 나오는 모습.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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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이목이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 쏠렸던 지난달. 회담을 닷새 앞둔 22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북한대사관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은 북미회담의 실무협상을 담당했던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가 직전까지 대사로 근무했던 곳이다. 단순 절도 사건은 아닐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렸던 이유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스페인 고등법원이 수사 상황을 토대로 작성한 공식 보고서에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반북 단체인 '자유조선'이 주도했으며, 미국 당국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에 침입한 무리는 모두 10명으로, 미국·멕시코 국적자 각각 1명과 한국인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북한 해방’ 운동을 하는 단체에 소속된 인권운동가라고 밝혔다.

리더는 ‘아드리언 홍 창(Adrian Hong Chang)’이라는 이름의 멕시코 국적을 가진 미국 거주자다. ‘샘 류’라는 이름의 미국 시민과 ‘우란 리’라는 이름의 한국 국적자 신원도 확인됐다.

◇北경제 참사관에게 탈북 권유…컴퓨터·휴대전화 등 탈취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작전이었다. 아드리언 홍은 사건 발생 2주 전 사업가로 가장하고 대사관을 방문해 소윤석(So Yun Sok) 경제 참사관에게 대북 투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에도 ‘소윤석을 만나고 싶다’며 대사관에 진입했다.

침입자들은 전투용 칼과 모형 권총으로 무장했다. 준비해둔 테이프로 북한 외교관들을 결박했고 소윤석 참사관을 지하실로 데려가 탈북을 권유했다고 한다. 탈북을 거부당하자 이들은 대사관 안을 뒤져 컴퓨터 2대, 하드디스크 2개, 휴대전화·USB 등을 챙긴 뒤 대사관을 떠났다.

이들은 4개 그룹으로 나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했다. 아드리언 홍은 미국 뉴저지행 비행기에 올랐다. 특히 아드리언 홍은 지난달 27일 해당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넘기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과 접촉했다고 스페인 고등법원이 밝혔다.

아드리언 홍은 반(反) 북한단체 '자유조선'의 리더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조선이 27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자신들이 있다고 밝히고 FBI 접촉 사실도 언급했다. ‘아드리언 홍-자유조선-FBI’로 이어지는 관계도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자유조선은 "마드리드 대사관의 어떤 정보도 돈이나 다른 이익을 위해 특정 단체와 공유하지 않았다"며 "다만 미국 FBI와 잠재적 가치가 매우 큰 일부 정보를 공유했다. 해당 정보는 자발적으로, 그리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공유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국무부는 그러나 FBI 연루설을 부정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26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정부가 이 사건에 연루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미국 정부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답했다.

◇‘김정은 타도’ 외치는 반북단체와 美가 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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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자유조선'으로 이름을 바꾼 '천리마민방위'가 1일 사이트에 공개한 '자유조선을 위한 선언문' . <사진출처;천리마민방위 홈페이지> 2019.03.01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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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조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VX 신경작용제 공격으로 피살되자 그의 아들 김한솔을 구출해 보호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받은 단체다.

'천리마 민방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지난 1일 김정은 체제를 타도하자는 내용의 '북한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하며 단체명을 자유조선으로 바꿨다. 구체적인 조직과 규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자유조선은 지난 11일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담장에 ‘우리는 일어난다’고 낙서를 했다. 지난 20일에는 ‘조국 땅에서(In Our Homeland)’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바닥에 집어던지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 최근 공개 활동을 늘려가고 있다.

미국이 스페인 대사관 침입 사건의 연루설을 부정하고 북한도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번 사건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에 미묘한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다.

◇사건의 핵심, 아드리언 홍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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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oseon Institute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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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침입 사건을 주도하고 자유조선의 리더로 알려진 아드리언 홍은 '북한 자유(Liberty in North Korea·LiNK)'란 이름의 비정부기구(NGO) 설립자로 알려졌다. 스페인 법원에 따르면 그의 나이는 35세로 확인됐다.

아드리언 홍이 2010년 테드(TED) 연구원일 당시 기재한 이력서상으로 이화여대에서 인권과 외교 정책에 대해 강의했고, 예일대 연구원(research fellow)으로도 활동했다.

아드리언 홍은 2006년 LiNK 직원 2명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탈북자 6명을 탈출시키려다가 중국 당국에 체포돼 선양의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그와 3명의 LiNK 직원은 미국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드리언 홍은 2015년부터는 '조선 연구원(Joseon Institute)'을 이끌고 있다. 연구원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준비하는 단체로 보인다. 홈페이지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격언인 ‘가장 어려운 일을 성공시키려면 가장 쉬운 것부터 풀어야한다’는 문구가 첫 화면에 표시돼 있다.

최태범 기자 bum_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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