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5 (토)

“FBI, 스페인 北대사관 탈취 자료 보유”… 美정부 개입설 확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美방송, 스페인 언론 이어 보도 / 美, 외교침해 등 국제법 3개 위반 / 스페인 수사 과녁, 美정부 향해 / 美국적 범인 인도 등 협조해야 / 北과 협상서 입지 좁아질 수도

주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사건에 미 연방수사국(FBI)이 개입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스페인 정부의 수사 과녁이 미국 정부기관을 향하는 모양새다. 미국 정부가 북한 관련 정보를 확보하려다가 오히려 제 발등을 찍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NBC방송은 지난 30일(현지시간) “지난달 스페인에서 북한대사관을 휘저어 놓은 반(反)북한 그룹이 훔친(stolen) 자료를 FBI에 건넸다고 밝힌 가운데 이 사건에 정통한 미국의 법 집행기관 소식통이 미국 정부가 그 정보를 받아 갖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이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자국 정부기관 연루 의혹을 인정한 발언을 보도한 것은 처음이다. 스페인 언론은 용의자 중 2명이 미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라는 의혹을 줄곧 제기해왔으며, 수사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에어드리언 홍창 등 주도자는 고용된 ‘용병’(mercenary)에 불과하다고 보도해왔다. 스페인 정부의 수사는 사실상 미국 정부기관을 정조준하고 있다.

세계일보

지난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주스페인 북한대사관 정문. 마드리드=AFP연합뉴스


미국은 난처한 처지로 몰리고 있다. 스페인의 최종 수사결과가 미국 정부기관을 지목하면 우선 미국은 최소 3개 이상의 국제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된다. 빈협약에 따라 외교사절은 면책특권을, 공관은 불가침특권을 보장받는데 북한으로서는 이를 침해당한 것이다. 대사관은 사실상 해당 국가 영토로 볼 수 있다. 무단침입, 강도, 폭력 등 스페인 국내법의 형사적 책임 외에도 미국이 유엔 회원국으로, 북한 정부에 대한 외교 특권 침해와 영토주권 침해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셈이 된다.

특히 우방인 스페인과의 관계는 더 문제다. 스페인으로서는 영토주권을 침해당한 셈이다. 자국 내에서 타국 정부기관이 테러 작전을 폈기 때문이다. 또 테러행위금지에 대한 협약에 따라 이 같은 공격행위 자체도 국제법 위반이다. NBC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국의 외국대사관에서 훔친 정보라는 특성 탓에 FBI가 미묘한 위치에 놓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학 명예교수는 1일 통화에서 “미국 정부 개입이 밝혀지면, 미국은 스페인과 북한 모두에 국제법적 법익을 침해한 상황으로, 책임을 면책하려면 물리적인 복구, 명예회복, 금전적 보상, 당사자 처벌 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지난 13일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한 대사관 직원이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말하는 모습. 사진=AP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미국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진 멕시코국적 에어드리언 홍창이나 그외 미국 국적 범인을 인도하지 않으면 이것도 국제법 위반이다. 오승진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미국과 스페인 간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미국은 스페인 형법에 따라 수사, 처벌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또 “스페인이 우방국이라 할지라도 주권침해 모습이 심각해 이런 사건은 통상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북한과 우호국이었던 말레이시아 정부도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 발생 당시 북한 국적 용의자를 공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터키 검찰 역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배후로 사우디 왕세자를 지목한 바 있다. 이는 자국의 수사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의도도 깔려 있다.

미국은 이번 사건으로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껄끄럽게 됐다. 미국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 발표한 ‘센토사합의’ 위반 책임론까지 쓸 수 있다. 센토사합의 서문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보장에 대해 합의했다”고 명시돼 있다.

북한과의 협상테이블에서 미국 정부의 입지가 약화할 수도 있다. 훔친 정보로 대화 상대를 농락했다면 미국도 북한의 과거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