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골반울혈증후군
간경변 환자 식도 정맥류
남성 정계정맥류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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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류’는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정맥에 생긴 혹(瘤)’을 뜻한다. 혈관이 혹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다. 어떤 이유로든 정맥 내 압력이 높아져 정맥 판막(혈액이 심장의 반대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 막)이 손상되면서 피가 역류해 혈관이 확장되고 늘어난 것이다. 잘 알려진 하지정맥류는 오래 서 있어서 중력으로 인해 피가 다리에 몰려 생긴다. 하지만 다른 정맥류는 조금씩 원인과 증상이 다르다.
성인 여성 만성골반통 주원인
정맥류는 골반에도 생긴다. 골반에 생기는 정맥류를 통틀어 ‘골반울혈증후군’이라고 한다. 골반 내 정맥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자궁·난소 주변에 혈액이 고이는 ‘울혈’ 상태가 된 것이다. 보통 임신부나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에게 주로 생긴다. 산모의 경우 여성호르몬 수치가 변하면서 혈액이 끈적해지고 자궁으로 피가 몰려서 발생한다. 자궁근종이 혈관을 압박해 생기기도 한다.
일단 정맥류가 생기면 자궁·난소 등 주변 정맥이 부풀어 오르면서 골반에 통증이 생기고 외음부가 붓거나 검푸르게 변한다. 보통 초기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의식하지 못한다.
문제는 놔두면 만성골반통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성인 여성의 30~40%가 만성골반통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는데, 이 중 약 40%가 골반울혈증후군으로 생긴다. 구분이 쉽지 않아 생리통이나 배탈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드물지만 급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혈관 압력이 높아지고 부풀면서 생긴 혈전이 혈관을 떠돌다 주요 혈관을 막는 경우다.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안기훈 교수는 “정맥류로 생긴 혈전 중 큰 덩어리가 폐동맥을 막으면 폐동맥 색전증으로 숨을 못 쉬게 돼 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체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식도에도 정맥류가 생긴다. 다만 일반인이 아닌 간경변 환자에게 나타난다. 소화기를 지난 정맥혈은 간문맥을 통해 간으로 전달되는데, 간경변으로 간이 딱딱해지면 간문맥의 압력이 높아진다. 간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혈액이 결국 식도 정맥으로 가면서 혈관이 부푸는 것이다.
식도정맥류의 심각성은 정맥류가 터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뇌동맥류가 부풀다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져 뇌출혈이 되듯, 식도정맥류도 식도 출혈을 초래한다. 간경변 환자의 24~80%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진단 후 2년 내 출혈 가능성이 약 30%에 이른다. 출혈량이 많으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혈관 속 시한폭탄인 셈이다. 고대안암병원 소화기내과 서연석 교수는 “간이 안 좋은 사람이 피를 토하는 경우의 대부분이 식도정맥류가 터진 것”이라며 “식도정맥류가 위험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남성에게는 난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음낭 피부에 생기는 정계정맥류다. 질환이 있어도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못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계정맥류가 발생하는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좌측 고환에서 신장으로 올라온 고환 정맥은 똑바로 서 있어 우측보다 중력에 의한 역류 작용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정계정맥류 중 85%가 좌측에 발생한다. 또 신장으로 연결되는 정맥이 동맥과 동맥 사이에 끼어 압력을 받아 발생하기도 한다.
정계정맥류는 음낭의 온도를 올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음낭의 온도 상승은 고환의 정자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계정맥류가 남성 불임의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한 번도 아이를 갖지 못한 남성의 35%, 한 번은 아이를 가졌지만 그 이후로 임신이 되지 않는 남성의 85%가 정계정맥류를 동반한다.
통증·부기 있으면 정기 검사
정맥류는 유전적 소인이 크다. 가족력이 있거나 한 곳에 정맥류가 생긴 사람은 다른 곳에도 정맥류가 생기기 쉽다. 스트레스와 흡연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정맥류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려면 적극적인 검사로 조기에 진단받는 것이 필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지속되거나 해당 부위가 붓고 혈관이 튀어나와 보이는 경우엔 전문의를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 난소정맥류 등 골반울혈증후군이나 정계정맥류는 초음파검사로 질환 유무를 알 수 있다. 안기훈 교수는 “통증이 계속되거나 부을 경우 정맥류로 인한 혈전이 주요 혈관을 막기 전에 혈전이 생기는지 초음파검사로 체크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반면 식도정맥류는 내시경 검사로 체크한다. 서연석 교수는 “식도정맥류는 육안으로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간경화가 있는 사람은 내시경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한다”며 “식도정맥류가 있지만 간 기능이 괜찮은 경우 1년에 한 번, 간 기능이 안 좋다면 이보다 자주, 식도정맥류가 없으면 2년에 한 번은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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