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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동물도 재난 대피소 갈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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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동물과 사람 안전 연결돼 있다”

재난 상황 동물 보호 대책 마련돼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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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시 영랑동에 사는 송량근씨(37)는 4일 밤 12시경 반려견 송이, 초코와 함께 차창 밖으로 번지는 불을 보며 달리고 있었다. 고성 산불로, 사는 아파트에도 매캐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대피 방송이 울렸다. 송씨는 함께 사는 친구, 그리고 개 두 마리와 함께 차에 올랐다.

가장 가까운 대피소인 영랑초등학교로 갔다. 사람들이 명부에 이름을 쓰고 대피소로 들어가는 가운데, 송씨는 입구에서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출입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들었다. 다시 차에 올라 속초초등학교로 갔다. 차에서 개가 짖고 있으니 멀리서 안내하는 사람이 손짓으로 안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차를 돌려 또다른 대피소인 속초학생체육관을 찾았으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어느 대피소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어느 대피소도 갈 수 없으니 그냥 바다 근처로 가면 괜찮겠지 싶어서 엑스포공원으로 갔어요.” 공원에 차를 대고 겨우 눈을 붙였다. 그날 송씨는 “귀중품 챙길 겨를은 없었지만 개 사료와 밥그릇은 챙겨 나왔다”고 말했다. 악몽 같은 밤은 끝났지만, 다시 돌아온 집에서 반려견 송이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피신하고 돌아온 내내 너무 힘이 없고, 구석으로 숨고, 밥도 잘 먹지 않는 거예요. 동물병원에 갔더니 사람처럼 놀라서 그런 것일 수 있다고 주사를 주고 식이 처방을 해줬어요.” 송씨는 대피소에 발도 못들이고 거절당하던 그 밤, “처음에는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개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같이 하대를 받는 것 같아 억울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동물도 가족 같은 존재인데, 사람이 대피한 한쪽에 (반려인과 동물도) 함께 피신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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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반려동물의 안전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재난 대응 매뉴얼을 보면 “가족 재난 계획은 동물을 포함시키라”고 권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영화 제목처럼 ‘할 수 있는 자가 구해야’ 한다. 재난 대응 매뉴얼의 ‘애완동물 대처방법’에는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라”는 조건이 붙는다. 매뉴얼에 따르면 반려인은 △자신의 지역 외부에 거주하는 친구나 친척들에게 비상시 자신과 애완동물이 머물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하고 △재난으로 귀가를 못 할시 이웃이나 친구, 가족에게 부탁해야 하며 △비상 기간 동안 담당 수의사나 조련사가 동물을 위한 대피소를 제공하는지 미리 알아둬야 한다.

해외의 경우 어떨까. 재난 대응에 민감하다고 알려진 일본의 경우도 동물에 대해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본에서 반려동물재난위기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채미효씨는 “일본 환경성이 제공하는 반려동물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이 지난해 개정됐는데, 오히려 강화된 부분이 보호자들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내용”이라고 했다. 일본 환경성의 ‘반려동물 재해 대책’에는 대피소 내 동물 동반을 허용하게 될 경우에 대한 지침이 있다. 이에 대해 채씨는 “대피소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 것이지 대피소 출입 자체를 법적으로 허용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간과 동물의 안전은 연결돼 있다”

미국의 경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겪은 이후인 2006년 미연방 정부가 ‘반려동물 대피와 운송 기준법’을 통과시켰다. 재난 대응 계획에 반드시 동물을 포함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이후 30여 개의 주에서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가 대폭 늘었다. 동반이 불가능할 때는 동물보호 담당관 등 현장 인력이 동물 전용 대피소로 동물을 안전하게 인계, 관리해 추후 반려인과 함께 복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소방안전본부와 캘리포니아 농무부가 협약을 맺어 재난 상황에서 구조·치료·보호·입양이 이어지는 업무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에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미국의 경우)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족 또는 공동체 단위 재난 대응의 필요성을 인지한 후 변화했다”고 썼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안전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이 안전하지 않은 이상 사람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며 “한국의 상황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피소 내 동물 동반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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